지식답지 않은 지식

 


지식답지 않은 지식
  신부는 입만 천당 간다는 말이 있다. 아는 것이 많아서 해 대는 말이 많기 때문이다. 요즘 애들도 어찌나 유식한지 아는 게 참 많은 애들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우리 모두가 예전보다 이렇게 유식해지게 된 것은 상당한 부분이 인터넷 탓이다. 각양각색의 검색 사이트에선 벼라 별 유치한 질문에서부터 아주 고도의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하는 내용에 이르기까지 무료로 친절한 답을 해 준다. 어디서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새우깡 한 봉지에 새우깡은 몇 개나 들어있는지, 사람들 머리 둘레를 화장지로 재어보면 대개 몇 마디 정도가 나오는지 등등 상상을 초월하는 궁금증과 그 답들이 모두 인터넷에 있다. 그러나 그렇게 인터넷을 통해 구한 지식이 과연 지식다운 지식인지 묻게 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지식답지 않은 지식의 종류를 몇 개 열거해보는 것은 우리의 지식을 점검해보고, 어른으로서 애들 앞에서나마 제대로 유식해 지고 싶어지는 까닭이며. 또한 지식인다운 지식인이 많지 않다는 세상에서 지식인이고 싶은 열망 때문이다.


   지식답지 않은 지식으로서 ‘바라본 지식, 건너편의 지식’이라는 것이 있다. 애들이 손쉽게 인터넷을 통해 구한 지식 대부분이 이 건너편의 지식에 해당된다. 여기저기서 마우스로 긁고 퍼서 조합한 지식들은 짜깁기의 형식과 모니터라는 틀 걸이 때문에 메시지 자체를 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모니터를 통해 바라 본 지식은 말 그대로 바라본 지식으로만 남을 뿐 나의 지식이 되지는 못한다. 반드시 출력하여 밑줄 그으며 읽어 나의 내면에서 내 식대로 내면화 된 지식이 아니면 그 지식은 나의 지식이 아니다. 가상의 공간에서 얻어진 지식은 말 그대로 가상의 지식일진대 이를 나의 지식인양 착각해서는 안된다. 이런 지식은 건너편의 지식일 뿐이다. 요즈음 많은 애들이 알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논리적으로 이를 되뇌일 수 없으며, 실제로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나의 내면에서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정보는 모두 쓰레기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로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쓰레기의 바다일 수 있다. 


   ‘나의 힘과 무서운 무기가 되는 지식’ 역시 지식답지 않은 지식이다. 인간관계와 세상살이 안에서 내가 취득함으로써 누군가에게, 또는 어떤 조직이나 무엇인가에 나의 영향력을 과시할 수 있는 앎을 말한다. 누군가를 꿰뚫어보고 있어서 조종할 수 있고, 상대방의 비밀을 나만이 알고 있다고 은근히 즐기면서, 동시에 권모술수와 폭로라고 하는 무기로써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는 지식이다. 정치하신다는 분들에게서 가끔 듣게 되는 ‘내가 입을 열면 여럿이 다친다’ 혹은 ‘깃털’이니 몸통’이니 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개인의 사생활로부터 한 국가의 사악한 비리에 이르기까지 이런 무기를 취득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과 조직, 그리고 물량과 에너지가 이 순간에도 엄청나게 소모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또 다른 폭로, 더 크거나 더 정교한 지식 내지 조작에 의해서 결국 자신도 죽거나 다치는 상황을 초래하게 마련이다. 지식은 누군가를 조종, 조작, 내지 지배하기 위한 힘이 아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팔아먹기 위한 지식’도 있다. 지식산업이니 지식의 지배, 또한 무한경쟁 이라는 끔찍한 말 속에서 지식을 팔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다. 팔아먹기 위한 지식이라는 것이 되로 배워서 말로 팔아먹는 요령일 수도 있지만 이는 속된 표현으로 장사꾼의 상업적인 지식에 불과할 뿐 진정한 지식은 아니다. 부정적인 의미에서 다른 누군가에게 팔아먹게 되는 지식은 내가 시간과 공을 들여 수집하거나 훔친 여러 가지 자료로부터 어떤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분가 독립해서 자기 회사를 차린다며 일정부분의 몫을 들고 나가는 일, 혹은 한 두 시간의 강의에 어지간한 사람의 한 달 치 월급에 해당하는 거금을 챙기는 소위 명사의 명 강의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한 형태로 상존한다. 학교나 학원이 그렇게 많고도 많지만 선생님이 없다는 탄식이 그래서 등장한다.


   지식답지 않은 지식과 참된 지식, 그리고 지식과 지성의 문제는 또 다른 문제이다. 참으로 뭔가를 알기 위해서는 책을 읽더라도 마침내 내가 읽고 있는 그 책이 나를 읽도록 읽어야 한다는 옛사람들의 말씀은 그래서 참 두렵고도 무서운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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