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다운 축제

   다시 6월이다. 우리에게는 6월하면 떠오를 수밖에 없는 전설 하나가 또 생겼다. 바로 4년 전의 월드컵 4강 신화의 전설이요, 붉은 악마의 전설이며, 대한민국에서만 볼 수 있었다던 길거리 응원의 전설이다. 우리는 불과 4년 전 몇 천 명으로 시작한 붉은 악마의 응원단이 몇 십만이 되고 몇 백만이 되어 급기야 700만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며 이른바 6월의 붉은 물결이요 붉은 혁명, 붉은 전설을 이루어 냈던 과정을 함께 체험했었다. 그때 우리는  원 없이 소리도 질렀고 박수도 쳤으며 눈물도 흘렸고 맥주를 마셔댔다. 그때 우리는 설마설마 하는 심정으로 밤잠을 설쳤고, 세계를 놀라게 했으며, 우리 자신마저 깜짝 놀라기에 이르렀었다. 온 국민이 월드컵이라는 최면에 걸렸는지, 붉은 악마라는 마법의 주문에라도 걸렸는지, 전 국민이 훌리건이라도 된 듯이 그렇게 법석을 떨면서 뜨거웠던 6월이었던 것이다. 그때 우리는 이제껏 그 어느 나라에서도 보고 듣지 못하던 그런 체험을 함께 했다.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계층과 세대를 넘어, 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단시일 내에 상식과 순리로는 이해되지 않는 그런 연출을 함께 해 내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때 우리는 과연 왜 그랬을까?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지금 생각해도 신통방통하고 궁금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으며 경이로운 체험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장대비를 맞으면서 열 시간이고 스무 시간이고를 꼼짝 않고 서서 박수치고 ‘대~한민국’을 외쳐대었던 군중들이 생리현상을 어떻게 해결했을까?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본 결과에 따르면, 길거리 응원 초기에 그렇게 많은 군중이 몰릴지 몰라 사회적으로 대비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사람들은 대책 없이 그저 참거나, 혹은 재빨리 이튿날부터는 어른용 기저귀를 찼다고 했다. 또 다른 한 가지. 그렇게도 많은 군중이 몰려 지나간 뒤에 담배꽁초 하나 없이 뒷처리가 그렇게도 깨끗했던 것은 정말 우리의 높은 시민의식 때문이었을까? 답은 아무래도 그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는 것이 정설이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축제를 정신적 퇴행이라 한다고 한다. 어른이나 성숙한 사람들이 애들처럼 유치해져서 서로 웃고 낄낄댈 수 있게 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런 과정이 개인이나 소집단이 아닌 사회적 대집단 안에서 이루어졌다면 마땅히 그 과정 뒤에는 그 집단이 아무리 성숙한 집단이라 할지라도 다소의 어지러움과 부작용이 있어야만 옳고, 또 가히 정상적이랄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02년의 6월 축제는 월드컵 4강이라는 실적 외에도 어른들 눈에 마냥 염려스럽고 걱정스럽기만 했던 이 땅의 젊은 세대들이 공동체와 연대감 속에서 하나의 영혼, 하나의 마음을 체험할 수 있었던 장이었고, 그저 빨갱이는 나쁜 놈이요 뿔 달린 적이기에 그를 묘사하는 빨강색 근처에는 얼씬도 말라던 오랜 세월의 red-complex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다면 극복할 수 있었던 체험의 장이었으며, 이 각박한 경쟁논리의 세상살이와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구미강호들을 격파해 내고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우리도 뭘 하면 해 낼 수 있겠구나 하는 강한 자신감을 획득할 수 있었던 체험의 장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생리적인 현상마저도 꼼짝 못한 채로 긴장하고 절제하면서, 또 행여 누가 볼세라, 행여 누가 우리더러 저급한 족속이라 손가락질 할세라, ‘그러면 그렇지. 결국엔 제깟 놈들이…’ 라고 말할까봐 담배꽁초 하나까지도 남김없이 주워야만 했던 것이었다면, 난 이를 감히 경직된 축제요, 조작된 축제였으며, 뭔가가 아직은 부족했던 안타까운 축제였다고 말하고 싶다.

 

   축제는 진정 축제다워야만 한다. 축제답지 않은 일회성, 내지는 일시적인 사회적 집단의 한풀이는 허탈과 공허, 심리적 공황만을 남겨둘 수도 있다. 그리고 지나치게 계획되고 절제된 축제는 두려움에서 기인한 축제이며 축제가 아닌 축제이다. 자연스러운 기쁨의 축제는 생명과 그 생명의 원천에 대한 신뢰에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이 세상살이 동안 진정 축제다운 축제가 끝내는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우리는 죽는 날까지 그를 동경하고 기도한다. 나는 다시 한 번 다가온 이번 월드컵 축제, 6월의 축제가 진정 축제다운 축제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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