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형제의 죽음

   주어진 시간과 날들은 소리 없이 간다. 누가 훔쳐간 것도 아니고 몰래 어디에 숨겨둔 것도 아닌데 흔적도 없이 그렇게 가고 만다. 매일 아침 세수할 때는 손가락 사이로 지나가고, 밥을 먹을 때는 밥그릇 위로 지나가고, 멍하니 가만히 있으면 빤히 뜬 눈 앞으로 지나가고, 온 몸으로 가로막으면 나를 훌쩍 뛰어넘어 내 위로 지나가고, 잠자리에 누우면 내 옆을 돌아 내 옆으로 지나간다. 그렇게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다하고 한 형제가 죽었다. 우리 수도자들은 핏줄, 출신, 성장 배경이 다른 채로 만나, 서로 형제라 고백하고, 매일 한솥밥을 먹으며 평생을 공동체라는 이름 안에 인생을 함께 동반한다. 이번에 돌아가신 형제는 일흔을 앞두고 소위 아홉수를 넘기지 못하면서 4년여 암 투병 끝에 돌아가셨다. 죽음에는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찾아온다는 보편성, 그 누구도, 또 그 무엇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대체 불가능성, 그리고 어떤 수단으로도 피할 수 없다는 불가피성이라는 특징이 있다. 그럼에도 한 형제의 죽음을 아주 가까이서 동행해야 했던 체험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죽음을 맞는 첫 번째 주제어는 품위와 자존심이다. 특별히 오랜 병고를 겪어야 하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형제는 유달리 기저귀를 차기 싫어했다. 기저귀를 차야 한다는 내 말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기에 기저귀는 아니더라도 그 소재로 된 조각들을 잘라 한 쪽에 숨겨두면서 아무도 모르니까 써보라는 말을 하고, 자신이 몇 번 체험한 뒤에야, 그리고 그 기저귀라는 것을 가져다 드리면서도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르고 나와 당신만이 아는 일이고 여기 침대 밑에 숨겨놓았다는 식의 공개된 거짓말 끝에야 그 기저귀라는 것을 차고 얼마동안을 지내다가 그렇게 형제는 돌아가셨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의 바지 끈을 누군가가 내려줘야 되는 상황이 가장 처절한 비참함을 맛보는 순간이라는 말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형제의 이런 모습들은 마지막 자기의 품위와 자존심을 유지해보려는 안간힘인 것 같았다.

 

   죽음의 두 번째 화두는 아마도 두려움이다. 형제는 마지막 날 까지도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이 무척 두려웠던 것 같다. 죽음이나 준비 같은 마지막에 관한 말을 서로 빤히 알고 있으면서도 감히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에는 ‘이대로 죽으면 축복이지.’ 했다가도, 또 어떤 날에는 ‘아직은 조금 더 살 것이니 걱정 마.’ 라고 하면서 눈을 흘기기도 했다. 죽는 순간까지도 거의 의식이 뚜렷해야 하는 잔인한 병인 암이었기에, 형제가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워하고 두려워하는 것임을 절절히 목격하였기에, 말 그대로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온다는 말이 무엇인지 내 눈으로 보았기에, 형제는 생의 인연을 놓기가 그렇게 두려웠고, 고통이 두려웠으며, 또 이 생(生)을 떠나 다른 생으로 옮겨가 맞닥뜨려야 하는 미지(未知)가 그렇게도 두려웠던 것일까 하고 되짚어 본다.

 

   죽음이 갖는 세 번째 특성은 일치라고 하는 속성이다. 가족 누군가가 아프거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할 때 모두는 쉽게 서로 한마음이 된다. 그리고 그 형제의 주위에 똑같은 마음을 지니고 모여들어 같은 눈물을 흘린다. 죽음은 혼자의 것이지만 동시에 주변에 있는 모든 이의 것이다. 가족 내에서 누가 아프다는 것은 그에게 가족들의 일치된 애정을 필요로 하는 순간이 왔다는 것이겠고, 형제의 죽음 주위에 수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은 죽음이나 인생살이가 철저히 혼자만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모든 이의 것이고, 우리의 것이며, 본질적으로는 우리 모두가 동일하고 하나라고 하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

 

   항구에서 어떤 배가 점점 멀어져가다가 수평선 너머로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듯, 그렇게 한 형제의 죽음으로 그 형제를 이제는 더 이상 예전의 모습으로 볼 수 없게 되었기에, 한편으로는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평선 너머 다른 포구에서는 점점 다가오는 배를 바라보며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라는 저 넘어 다른 포구를 생각할 수 있기에, 그리고 아무것도 확실히 아는 바는 없지만 뭔가를 나름대로 믿을 수는 있기에, 형제를 오래도록 기억할 수는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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