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잘라야만 했던 이유는?

 *빈센트에 관한 여러 자료들을 종합하여
  빈센트가 자신의 귀를 잘라야만 했던 이유들이나 그 가능성을
  집대성 해 봅니다. 한 2년 쯤 전에 네이버 지식 in 에 집필하였던 내용으로서
  그곳에서도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1888년 12월 23일 밤

반 고호가 자신의 귀를 잘라야만 했던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그날 밤 도대체 왜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일까?



1.사랑하던 여인과의 관계에서?


-너무도 사랑했던 그녀에게 줄 것이 없어 고민하다가


 아침마다 자신에게 아름다운 새소리와 바람소리를 들려주는


 귀라도 잘라서 주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좋아하던 그녀가 볼품없이 생긴 고흐의 얼굴 중에서


 그나마 잘 생긴 부분은 귀라고 했기 때문에.


-사랑했던 그녀가 자기를 사랑한다면 귀를 선물해 달라고 했기 때문에.


-투우사가 소와의 싸움에서 이긴 뒤, 그 소의 귀를 잘라


 사랑하는 여인이나 아름다운 여인에게 바치는 풍습을 생각하고


 소가 아닌 자신의 귀를 잘라 그녀에게 주고 싶었기 때문에.


 (고흐의 일생에 고흐와 개인적인 관계로 등장하는 여인은 다섯이다.


 첫째는 영국에서 로이어 부인 집에 하숙하여 살 때 그 부인의 딸이었던


 열아홉 살 바기 외제니 우르술라였다. 당시 고호는 스무 살이었다.


 고흐가 그녀에게 청혼했는데, 이미 숨겨 둔 약혼자가 있다고 응답했던 여자.



 둘째는 1881년-고흐 나이 28세 때- 만났던 큰 아버지 스트리커라는 목사의 딸 케이.


 남편과 사별한 처지에서 고흐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던 여인,


 고흐와 만날 때는 이미 8살된 아들이 있던 그녀,


 끈질긴 구애와 편지들에도 불구하고 응답이 없었고,


 이에 암스텔담으로 찾아갔을 때 목사님을 통해


 더 이상 괴롭히지 말라는 쪽지만으로 응답을 건넸고


 이에 고흐가 석유 램프 속에 자신의 손을 넣으며


 ‘제 손이 이 뜨거움을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시간만큼 이라도’ 만날 수 있기를 갈망했고,


 또 그녀가 나타나지 않으면 손 뿐 아니라 온 몸을 태워버리겠다고 했음에도


 끝내 화상만을 입고 돌아서야 했던 여인.



 셋째는 매춘부였고 이름은 크리스틴 클라지나 마리아 후르닉,


 고흐는 그녀를 시엔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고흐가 그녀를 만났을 때 이미 3살이나 연상이었고


 다섯 살 난 딸이 있었으며 또 임신 중이기도 했다.


 알콜 중독에 성병을 앓던 여인.


 그럼에도 고호의 모델이 되어주었고, 위로가 되어 주었으며,


 생리적 욕구의 해결사이기도 했던 여인.


 고흐는 두 아기의 엄마이기도 했던 그녀와 한 동안 동거하였다.


 고흐는 그녀에게서 성병을 옮아 한 동안 고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생 테오를 비롯한 주변의 압박과 입 하나라도 줄여야 할 현실적인 가난,


 그리고 그녀의 게으르고 문란한 생활,


 돈 문제로 그녀의 동생이 고흐에게 폭행을 가하는 등


 여러 가지가 겹친 복합적인 이유로 끝내는 그녀를 버려야만 했었다.




그리고 넷째 여자는 누에넨에서 만난 이웃 섬유공장 주인의 딸이었던 마호르트.


고흐보다 10살이나 많은 41세의 노처녀였다.


고흐의 집에서나 고호의 과거를 잘 알고 있는 마호르트의 가족의 반대로


마호르트가 정신 불안을 얻게 되었고 이에 곤란한 입장이 되었던 처지.


결국 그녀가 자살 소동을 부렸고 이에 대한 온갖 비난이 고호에게 쏟아져


비극으로 막을 내려버린 사랑 아닌 사랑.


다섯 째는 술집여자 라셸-라헬이라 발음하는 것이 더 낫다. 사실 같은 이름이다.


이 라헬이라는 이름에 관하여는 마태오 복음 2장 18절의


‘자식 잃고 슬피우는 라헬’이라는 귀절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그녀는 1888년 12월 23일 밤 11시 30분경


고흐가 ‘조심해서 다루라’ 하면서 귀를 잘라 건네주었던


라마르틴 광장의 술집 여자였고 창녀였다.)



2.잠시 함께 살던 고갱과의 관계에서?


-고갱과 말다툼을 하다가 고갱에게 심한 말을 들었고


 그런 말을 들은 자신의 귀가 저주스럽다고 여겼기에.


-고갱이 다툼 끝에 집을 떠나자 그 고갱을 죽이고 싶도록 미웠는데


 떠나버린 고갱을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는 생각 끝에 자신의 분을 못 이겨서.


-화가들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아를이라는 곳에


 여러 화가들을 초대했으나 이에 고갱만이 응답하여 같이 지내게 되었고,


 얼마가 흐른 뒤 고갱과의 다툼 끝에 고갱마저 떠나려 하는 것을 듣고


 자기의 진심을 너무도 몰라준다는 심정을 결국 자해로 표현해 낸 것.


-고갱이 다툼 끝에 자기를 피하고 계속 만나주지 않으니까 화가 나서.


-고갱과 다투었고, 그로 인해 고갱이 떠나겠다고 하자


 또 다시 참을 수 없는 외로움을 남겨주게 될


 고갱과의 이별이 두려웠고 그 이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고갱과의 다툼 끝에 고갱을 면도칼로 죽이려고 덤볐으나


 이에 실패하고 분함을 참을 길 없어서.


-사실 고흐 자신이 자신의 귀를 잘라버린 것이 아니다.


 고갱과의 싸움 끝에 고갱이 옆에 있던 펜싱 검을 들어 자른 것이다.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고갱이 떠나버린 뒤 자신의 물건을 보내 달라고 했을 때,


 펜싱 검만이 없고 마스크와 장갑이 있었는데 이는 고갱이 자신의 행실을 은폐하기위해


 사고 직후 펜싱 검을 챙겨 떠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3.그림을 그리다가?


-자화상을 그리던 중


 자신의 귀가 잘 안 보이고 그림으로서 잘 포착이 되질 않아서.


-자화상을 그리던 중 귀 부분이 이상하다는 고갱의 지적에


 귀 부분을 계속 고쳐도 잘 되지 않았고, 이에 실제 귀를 잘라 그림과 맞춰 보느라고.



4.병적인 이유로?


-귀 울림증을 오래도록 앓던 중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흐는 알콜 의존증이 있었다.


 압생트(absinthe)라는 독한 술을 즐겨 마셨음은 잘 알려진 일이다.


 고흐는 술에 취해 일시적인 환각 상태에서 귀를 잘랐다.



5.심리적인 이유에서?


-추락을 두려워하는 비행기 조종사가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는 길 중에 하나가


 그 비행기를 스스로 추락시켜 버리는 것일 수도 있는 것처럼,


 처절하게 인정받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고야 말 것 같은 자신의 추락이 두려워


 스스로 자신을 추락시켜 버리기 위해.


-그림을 위해 목숨까지 걸었으나 끝내 인정받지 못한 자신의 그림,


 그리고 동생에게 계속 생활비를 받아 연명해가야만 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면서


 뭔가 색다른 돌파구를 마련하고픈 결심과 심정의 표출로서.



6.성서적인 근거에서?


-일찌기 목사가 되기 위해 오랫동안 공부했고,
  전도사로도 활약했던 고호의 과거를 볼 때


  고흐가 성서를 익히 주지하고 있었음은 자명하다.


  고흐는 비탄과 고독의 게쎄마니 동산에서


  어느 날 예수님을 잡으러 왔던 무리들 중 하나인 말코스의 귀를


  제자인 베드로가 칼로 내리쳐 잘라 버렸으나


  이를 예수님께서 치유해 주셨음을 상기했고


  (참조.요한18,10 마태26,52 마르14,47 루까22,51),


  자신의 비참하고 외로운 처지가 예수님과 같다고 여겼고


  이를 구해 주실 분은 진정 예수님뿐이라고 생각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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