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헨리 나웬 신부

내가 만난 헨리 나웬 신부

<로마의 어릿광대>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85년, 그러니까 유학이라는 이름으로 처음으로 외국 땅, 이태리의 로마에 도착했을 때였다. 때는 6월이었기에 이미 학교의 기숙사는 텅 비어 있었고 나는 10월 학기의 입학을 위하여 아무도 없는 캠퍼스에서 정말이지 엉덩이에 솟은 땀띠가 짓물러 터지도록 앉아 인내롭게 이태리 말을 공부해야만 했던 때였다. 그런 정신없는 와중에 있던 내가 우스꽝스럽게라도 보였던지 뽈 반루펠렌 이라는 벨기에 국적의 한 친구가 뒤늦게 여름방학 휴가를 떠나면서 “Clowning in Rome(로마의 어릿광대)” 라는 영어로 된 책 한권을 선물하는 것이었다. 바로 이 책이 그 저자인 헨리 나웬 신부님과 내가 만난 첫 번째 만남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국내에 이봉우 신부님께서 번역하셨던 “상처 입은 치유자” 라는 책이 이미 있었다. 어찌 되었건 나는 “로마의 어릿광대” 라는 책의 제목에 나의 처지를 견주면서 그 제목 때문에 읽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말을 배운답시고, 또 공부를 한답시고 그런 꼬락서니를 하고 있던 내 상황이 마치 광대짓 같이 여겨진 때문이었다. 제목 때문에 펼친 책이었지만 서문의 둘째 페이지 ‘광대’부분을 읽으면서 난 곧장 이 책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 대목의 내용은 이랬다.

     “서서히 나는 이곳 로마에 맹수들, 조련사들, 신기한 묘기로 우리의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수많은 곡예사들, 그리고 실제적이고도 진실된 얘깃거리를 전해주는 어릿광대들이 어우러져 거대한 서커스가 한 판 이루어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광대들이 무대의 중심에 있지는 않는다. 그들은 스타들 사이에서 막간을 이용하여 등장하고  실수와 떠듬거리는 말 짓으로 우리가 경탄해마지않았던 대스타들의 명연기 때문에 생겼던 긴장 후에 우리를 몇 번이고 웃게 만들어준다. 광대들은 어딘가 이상하다. 그들이 하려고 하는 것에 성공하지도 못하고, 어딘가 서툴고, 균형을 잡지 못하는가 하면 어설프기 짝이 없다. 허나 그들은 우리 편이다. 우린 광대들을 대할 때 경탄이 아닌 공감으로, 놀라움이 아닌 이해로, 그리고 긴장이 아닌 웃음과 미소로 만난다. 우리는 그들이 뭐 하나라도 잘 해낼 수 있을까 하고 곧잘 의구심을 가져보기도 한다. 광대들은 어쩌면 우리의  모습과도 같이 보인다. 광대들은 우리 모두가 인간적인 연약함을 지고 있음을 서로 공감하게 하고, 그래서 눈물과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그렇다. 이 세상이 한판 서커스 장이라고 한다면 그 서커스 장에서 우리 신앙인들은 스타 쪽일 것인가, 광대 쪽일 것인가? 우리의 주님께서 대스타이시고, 또 대스타이셔야 하는 분이라면 우리는 틀림없이 광대 쪽이다. 아직 그리스도를 모르는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명연기에 감탄하고 환호하며 긴장하고, 그 뒤를 따라가는 우리 어줍지 않은 신앙인들의 몸놀림에는 그저 공감으로, 이해로, 웃음과 미소로 우리를 만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소명이고 살아가야 할 바인 것이다.
(계속)

“내가 만난 헨리 나웬 신부”에 한개의 의견

  1. 처음이 5번째 글인 줄을 모르고 읽기 시작했다가 뭔가 이상하네 하면서 연작임을 알았습니다. 마지막에 (아니 진짜로는 첫번째 글의 ) 우리의 주님께서 대스타이시고, 또 대스타이셔야 하는 분이라면 우리는 틀림없이 광대 쪽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소명이고 살아가야 할 바인 것이다.
    부족한 삶에 희망이 솟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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