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자리

 

꽃자리




꽃자리라는 시가 있다.


함께 사는 수녀님께 부탁해서


책갈피 크기로 만들고 복사해서 코팅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명함대신 몇 년을 두고 나누어주었던 시이다.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구 상 선생님께서 지으신 시이다.


주로 애들 만나면서 사는 사람이고 보니,


또 그런 사람들만 주로 만나다보니


애들 만나는 현장에 있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아이들을 만날 때


반갑고 고맙고 기쁘게 만나야 된다는 뜻이었고,


아이들을 꽃 삼아 꽃 피우되


시장에 잘 팔리는 그런 꽃이기보다는


민들레, 채송화, 나팔꽃들처럼 시장에 내다 팔리지는 않더라도


나름대로 고유한 향기와 아름다움을 간직한 꽃으로


피어나게 해야 한다는 사족을 달아서 그렇게 했다.




몇 해를 두고 이 시를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면서도


내심 구 상 선생님의 시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었다.


평소 읽었던 구 상 선생님의 시와는


어딘지 다소 거리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언젠가 이 시의 내력을


구 상 선생님께 여쭤볼 수 있으면 하던 차 였는데,


마침내 의외의 자리에서 해묵은 그 소원을 이루었다.


바로 이 곳 춘천교구의 교구장님이신


장 익 주교님을 뵙고서였다.


무슨 일로 주교님을 뵙는 자리에서 말씀을 나누다가


문득 장 주교님께서 구 상 선생님과 가까우심을 떠올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 시에 대해서 아시는가를 여쭈어 보았다.


주교님께서는 의외로 좀 알고 계신 것이 아니라


아주 자세히 알고 계셨다.




옛날 이 나라의 ‘꽁초’선생으로 잘 알려진


공초 오상순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 분은 평생을 초인으로 기인으로


몇 편의 시만을 남기고 돌아가셨다.


그 분 살아생전의 소일이란 것이


담배를 무던히도 태우시는 일이었고,


또한 항상 공책을 앞에 놓고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반갑고 고맙고 기쁘네’ 하시면서


만날 때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뭔가 한 소리씩을 쓰게 하셨다는 것이다.


처자식도 없이 재산도 없이 아무 것도 남기시지 않고


당신 쓰신 시 몇 수와 만나는 사람들이 써 댄


공책들만을 남기고 돌아가시면서


공초 오상순 선생님께서는


‘내가 자유에 얽매어 살았구나’하는 임종게 한 마디를 남기고


이 세상을 뜨셨다.


6월 며칠인가 그 분 기일이 오면 아직도 구 상 선생님은


공초 선생님 묘소에 다녀오신다고 한다.


꽃자리라는 이 시는 바로 구 상 선생님께서


그 공초 선생님의 말마디를 앞 뒤에 놓고


중간 대목을 쓰신 것으로서


돌아가시던 공초 선생님의 임종게를 염두에 두고 쓰셨다한다.


장 주교님께서는 구 상 선생님으로부터


직접 이 설명을 들으셨다 했다.


이것이 이 시의 내력이다.




문득 이 시로 인하여


두 분 큰 선생님께 어줍잖은 누를 끼치지나 않았나


두려운 마음이 든다.


그리고 두 분께 마음으로부터 큰 은혜를 입었구나 싶다. (200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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