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게이트나 한 번 해 볼걸

 

나도 ‘게이트’나 한 번 해 볼걸.




요즈음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본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다’던 사람의 부끄러움이 며칠 지나지 않아 지저분하다 못해 수치스러움으로 남아버렸고, ‘내가 그런 일에 연루되었다면 할복자살이라도 하겠다’던 호언장담은 어느 샌지 자살은 고사하고 씁쓸한 감방 안의 외로움으로 전락해 버렸으며, 그것을 보고자란 애들의 우상이라는 어떤 가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건아가 되겠다’던 입버릇을 미국 시민권으로 바꿔치기 해 버렸다. 이런 ‘게이트’니 저런 ‘게이트’니 하는 갯수가 몇 개인지도 모를 이른 바 ‘게이트’ 소동은 근 1년을 끌면서 아직도 ‘게이트 타령’을 읊조려 대고 있다. 나도 빌어먹을 게이트나 한 번 해 볼걸 하는 생각이 모락모락 속에서 끓어오른다. 게나 고동이나 민족의 영웅이요, 구국열사가 되어보겠다고 설치는 너나 없는 사람들이 TV 인터뷰에서 ‘이제 조금 있으면 저에 대한 지지도가 수직상승하게 될 것입니다’ 하는 호언장담을 듣고 있노라면 그 지지도의 주인은 바로 국민이고 그 국민 중의 한 사람이 나 일진데, 내게는 물어보지도 않고 그 따위 소리를 해대는 사람들이 웃기다 못해 가소롭다. 한 편으로는 나 같은 사람의 표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그런 사람들 앞에서 ‘그럼 나는 뭐야?’ 하는 자조와 괜스러운 허탈감으로 하늘을 자주 쳐다보게 된다.




며칠 전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 편할까 싶어 거금 1만원을 투자하여 1만 1천 원 어치를 사용할 수 있는 정액권을 한 장 샀다. 그런데도 난 7천여 원이 남아있는 지하철 표를 또다시 사용해야 할 것인가 하는 심한 회의에 사로잡혀 있다. 사람 적은 춘천에서 6년을 살다보니 사람들 헤치고 움직여야 되는 것이 너무 힘들고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촌놈이 되어버린 탓이고, 그 많은 서울 시민들이 1분 1초를 다투는 사업가요, 특수 정보요원인 모양으로 죄다 휴대 전화기를 하나씩 꺼내들고 리시버를 귀에 꽂고서 자기의 사생활을 소리소리 고함질러대는 꼬락서니가 견딜 수 없는 고통인 탓이며, 그리고 ‘내가 줄 수 있으면 단 돈 얼마라도 이유를 묻지 말고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에게 애긍 할 수 있어야겠다’고 언젠가 마음먹었었는데 이제는 구걸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져 이 사람 저 사람들에게 주다보니 내가 거지가 되고 말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세상은 이처럼 윗 문단에서 얘기한 그런저런 사람들의 저쪽 세상과 아랫 문단의 나 같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쪽 세상으로 양분되어 있는가 보다. 아니다. 엄밀하게 얘기한다면 성직자라는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이쪽도 저쪽도 아닌 짜투리요, 떨거지이며, 소숫점 이하요, 괄호 안의 세상인 것이 틀림없으리라. 조물주의 사랑은 그 누구도 예외함이 없이 공평무사하시다 했길래 말이다.




강원도를 떠나 다시 서울 산지 며칠이 되지도 않았는데 나는 벌써 여기가 싫어져 버린다. 어디서 살아야 할까? 수도원의 울타리 안에만 꼭꼭 숨어 살아야 하는 것일까?
(2002.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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