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흘리는 일이 먼저

 

테러참사와 우리의 할 일




며칠을 정신없이 지냈다. 바로 미국의 테러 참사 때문이다.


온통 미국의 테러에 관한 보도, 그리고 그에 뒤따르는 부시 행정부의 소위 응징 추이에 관한 보도들이 계속된다. 모처럼 신나는 보도거리를 만난 듯 신문과 라디오 그리고 TV는 쉴 새 없이 동일한 주제를 말 그대로 쏟아내고 있다. 한 편으로 그 복잡다단하던 국내의 문제들이 일거에 모두 해결되어버린 것처럼 우리는 먼 나라의 이야기들로 바빠진 요 며칠을 산다. 많은 신자들이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되고 처신해야 되는가를 두고 의문들이 많았다. 나도 국내의 문제는 관두고 우선 미국의 참사에 대해서라도 뭔가 이야기를 하긴 해야만 할 것 같다.




성서의 구약 이야기는 접어두고라도 2천년의 유랑과 독일인에 의한 6백만의 학살 끝에 미국의 도움으로 1948년 아랍인들 복판에 유대인들의 이른 바 위대한 이스라엘이 세워지던 일, 그에 따른 팔레스타인들의 또 다른 유랑의 시작, 1967년의 중동전쟁과 아랍인들의 또 다른 패배 그리고 또 다른 영토손실, 유엔의 안보리 결의에 따른 이스라엘 점령지의 반환 촉구 이행과 이스라엘의 거부, 1993년 이스라엘이 점령한 지역에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위한 자치 국가 설립 합의라는 오슬로 평화 혁명, 그 합의의 이행과정에서 일어나는 충돌로 상호 원천무효 선언, 그에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무력투쟁이라는 악순환, 최근 남아공의 더반에서 열린 인종회의 미국 불참…에 이르기까지.




지난 50년간의 주요 사건들을 되새기는 것 정도밖에 우리는 왜 미국이 그런 엄청난 테러를 당하게 되었는지, 또 아랍인들은 왜 그 순간 환호를 했다는 것인지 세세히 피부적으로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 순간 분명히 내가 알고 있고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소위 자존심 강하다는 미국 본토가 형편없이 깨졌고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는 것, 이에 따른 미국의 분노에 찬 보복이 있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결코 끊어질 수 없는 폭력의 악순환이 또 다시 오랜 세월 계속되어 질 것이라는 것, 대개 이 세 가지로 요약이 된다. 미국의 이른 바 이번 응징은 응징으로 끝나지 않고 어떤 형태로든 또 다른 테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 순간 우리 나라와 우리는 어쩌면 미국의 분노와 보복 끝에 우리에게 미칠 경제적, 정치적 손실이 어떻게 될 것 인가에만 관심이 있는 듯이 보인다. 그리고 이 일련의 사건들이 우리에게는 영향이 미치지 않는 먼 나라의 이야기로만 남아있기를 비는 마음들인 것 같다. 또 어쩌면 며칠 신나게 보도할 거리가 생긴, 먼 곳에 흡사 춘추전국시대의 난리, 아니면 불난 집의 난리라도 구경하는 양 싶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성의 존엄을 위해 일생을 바치셨고 그래서 세계인의 추앙을 받던 마더 데레사께서 받으셨던 노벨 평화상을 똑 같이 받은 그런 ‘위대한 분(?)’을 모신 나라이다.




이 순간 우리가 해야할 바가 있다면,


첫째, 일상의 리듬 속에서 불현듯 세상을 떠나게만 되었던 수천 수만의 영혼들을 위해 함께 눈물을 흘리고 그들의 명복을 기원하며 다친 사람들이나 슬픔에 잠긴 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그 무엇이라도 하는 것, 둘째, 폭력에 폭력으로 끝장을 보자고 덤벼야만 하는 인간 본연의 연약함과 두려움, 그러한 인간성의 치유와 참 평화를 위해 은총을 기도하는 일, 바로 이 두 가지 뿐이다.




왼 뺨 맞으면 오른 뺨 대 주고, 오리를 가자면 십리를 가주며, 겉 옷 달라면 속 옷 까지 주어버리고, 원수를 네 몸처럼 사랑해야 한다던 말씀이 참으로 얼마나 어려운 말씀인지, 또 이 지구라는 별 위에서 그런 것이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자꾸 드는 그런 요즈음이다.(200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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