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나 할 것이지

 

신부나 할 것이지.




요즈음 너나없이 대선 후보가 되겠다고 설치는 사람들이 연일 뉴스시간의 화제 거리가 된다. 대통령이 되어 보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은 저마다 뭔가 소위 ‘출마의 변(辨)’이랄까, 상징적인 어떤 모양새들을 내어 놓는다. 지난 날 들을 새겨보면 그런게 참 가관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던 이승만 으로부터 그에 맞서 “못살겠다, 갈아보자” “밑져봐야 본전이다. 갈아나 보자”라고 대들었던 신익희, 그 말에 또 다시 “갈아봤자 소용없다. 구관이 명관이다”라고 응대하던 이승만, 가난한 농민의 아들이요 성실한 일꾼이라며 뿔 달린 커다란 황소를 그려 놓았던 공화당과 박정희, 파출소 문짝마다 써 붙이고 시작하던 “정의사회 구현, 부정부패 척결”의 전두환, 청와대 회의 탁자를 원탁으로 바꾸고 와이셔츠 팔 걷어 부치던 “보통사람들의 위대한 시대”라던 노태우, 대도무문(大道無門)의 김영삼, “준비된 대통령, 경제 대통령”이라던 현 김대중에 이르기까지 말들도 많고 요상한 짓이 많기도 참 많다.




“온 천지를 벌겋게 물들이는 아름다운 낙조”를 이야기 하는 연장자 김종필로 부터 이른 바 금년의 대권 후보들은 이제 어떤 얘기들을 해 댈까? 속을 만큼 속기도 했다는 생각이 한 편에서 들지만 아직도 수 십 년은 더 속아야 할 것 같은 막연한 불안이 드는 것은 어찌된 영문일까? 근본적으로 정치가라는 사람들이 이 나라를 잘 살게 해주고 국민들을 잘 살게 해 준다는 환상은 버려야 하며, 위대한 국가는 결국 위대한 국민이 만들 수 있을 뿐이라는 평범한 역사의 교훈은 어떻게 하면 실천 할 수 있는 것일까? 후임자가 나서서 전임자를 어떻게든 때려잡으면서야 비로소 자신의 입지를 정당화하고, 그러다가는 결국 더한 짓을 해 놓고 말았던 나쁜 역사를 어떻게 하면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대통령 취임할 때만 시민 대표를 청와대에 초청하고, 취임하자마자 가장 먼저 미국이라는 나라를 방문해야만 정통성이 생기는 것 같은 그런 되풀이를 하지 않으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감옥에 가거나 이 땅에서 쫒겨나지 않으면서 우리 이웃으로 남는 대통령들을 보고, 우리의 돈에 우리도 우리의 대통령을 새겨 볼 수 있는 날이 과연 오기는 올까?




과연 뭘,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이런,


대통령은 결코 되지도 못하고,


될 필요도 없으며,


될 이유도 없는 녀석이 이른 아침부터 괜한 넋두리다.


신부나 할 것이지.(200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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