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 하나

 

요즈음 우리 수련관에 분꽃이 한창이고 또 일부는 이미 지고 있다. 노랑, 진홍, 하양, 분홍등 분꽃은 빛깔이 다양하고 무엇보다도 채송화와 마찬가지로 꽃 집에서 팔 수 없는 꽃이기에 나는 이런 분꽃을 무척 좋아한다. 오늘 아침에는 조그만 다알리아도 한 송이 피었고 작은 호박꽃도 한 송이 피었다. 조그만 뒷 뜰에 어렸을 때 보았던 과꽃이니 분꽃이니 백일홍 채송화 맨드라미 같은 이른 바 잡꽃들을 봄에 심었던 결과이다. 분꽃을 보면’꽃’이라는 제목의 박두순씨라는 분이 지었다는 동시가 한 편 생각난다. 언젠가 이해인 수녀님께서 당신 시집을 몇 권 보내주시면서 자기 시 이야기를 하기는 쑥스러우셨던지 보내주시는 책들 속에 살짝 복사해서 넣어주셔서 알게된 시이다. “말 함이 안함보다 더 쉬운데 일생 동안 한 마디 아니하네. 다만 가슴 단단한 씨앗을 남기네” 나로서는 별로 잘 아는 바 없는 분의 시이고 또 시의 제목도 분꽃이라 하지 않으시고 그저 ‘꽃씨’라고 하셨지만 나는 이 짧은 시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고 여름철이 지나가면서 만나게 되는 분꽃을 보면 꼭 이 시가 생각나곤 한다. 어렸을 때 기억으로 분꽃이 검정 씨앗을 하나만 남기고 지는 것이 나에게 깊은 인상으로 남았기 때문인 듯 싶다.




어쩌면 우리 민족의 고유한 심성 중의 아름다운 부분 하나는 차라리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로, 또는 하지 못한 채로 그저 가슴 단단한 씨앗 하나를 남기고 꽃을 떨어뜨리는 바로 그런 부분에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굳이 구차한 말과 몇 마디 어휘로 오해를 풀고 내 뜻을 전하려 하기보다도 조금은 손해보는 것 같고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하더라도 내 안에서 눈물을 삼키며 더 많은 꽃을 위해 다음 여름을 기약하며 단단한 씨앗 하나를 남기는 것이 아마도 우리의 고유 정서일 것 같다는 것이다.




나는 오늘 아침 뒷 뜰의 조그만 분꽃들을 보면서 행여 오늘을 사는 우리가 꽃 다음의 씨앗이 아닌 눈 앞에 보이는 꽃들에만 취해 살아버리지나 않을까 괜스레 조바심이 나 본다. (2001.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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