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를 청합니다

 

춘천을 떠나왔다.


한 소임지에서 6 년을 지내고 그렇게 떠나왔다. 영영 떠나지지 않을 것만 같던 그곳을 떠나왔다. 떠나기 전 날 저녁 공동체 형제들의 배려로 그 동안 나를 거두어 주었던 많은 이들을 한 자리에 모아 저녁식사를 대접할 수가 있었고, 또 이런 저런 선물도 많이 받았으며, 헤어지는 섭섭함에 목이메인 사람들마저 많이 있었다. 단 한 사람 아는 사람도 없는 강원도라는 객지에서 건물만도 2 천 평이나 되던 그 큰 시설을 어찌 꾸려갈까 하는 두려움 속에서 시작했던 일을 소위 큰 과오 없이 마쳤기에 자랑스럽게 퇴장하는 셈이었다. 저녁을 마치고, 또 몇 몇이 모여 한 잔을 하고, 지나간 일들을 회상하면서 무용담처럼 두어 시간 얘기꽃이 피었었다. 그리고 마지 막 밤을 위해 잠자리에 누었는데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았다. 처음에는 이게 인간적인 미련과 섭섭함 때문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이리 저리 뒤척이다가 결국 불을 켜고 앉아보니 새벽 세시 삼십 분이었다.




잠을 이루지 못한 이유는 지나 온 6 년이 부끄러웠기 때문이었고 창피하기까지 한 때문이었다. 되새겨보니 그 동안 살았던 시간들이 하느님의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도무지 인간적인 처세요, 요령이었으며, 살아남기 위한 눈가림이요, 세속적인 임기응변이었을 뿐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너무나도 이기적으로만 살아버렸다는 때늦은 죄스러움 때문이었다. 결코 가슴 뭉클하고 감동적인 아름다운 사람으로서 기억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자괴감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침에 직원들 출근하면 손 흔들어 배웅 받으면서 떠나기로 했었는데 그 때까지 기다려 사람들 뒤로 하고 떠날 용기가 나질 않았다. 자동차 키를 들고 어두운 그 밤 시간에 조용히 떠나버리고 싶어져 몇 번을 들락거리고 망설였는지 모른다.




어쩌면 그리스도인의 기본 실존은 하느님 앞에 부끄러움과 죄스러움을 고백할 수 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일까 하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채우고 있었다.




문득 며칠 전 홍 신부님과 식사하면서 ‘그래, 자네는 까를로 까레또라는 분이 모래 둔덕을 의지하고서 모든 주소록을 깡그리 태워버렸다던 그 마음을 아는가?’ 라고 물었을 때, ‘그 다음 날 새 주소록을 또 시작하고 말걸’ 하며 농담조로 웃으며 답해 오던 말이 생각나면서, 이런 회한과 뉘우침을 체험하고서도 또 언제까지나 부질없는 반복을 해 대고 말 것만 같은 자신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래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결국 아침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밤에 떠나 버리는 것이 또 다른 교만이요 기만일 것이며, 다른 사람들이 이별하듯 그렇게 이별하는 것이 비록 또 하나의 우스꽝스러운 광대 짓일지라도 그게 많은 사람들을 편하게 하려는 것이겠거니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게 아침이 왔고, 눈 덮인 강원도 땅을 속으로 울면서 뒤로하고 떠나왔다.




인연을 맺었던 분들께 지나온 허물에 대하여 용서를 청한다.(200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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