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정말이지

 

난리법석통의 수능시험이라는 것이 지나간 지 꼭 1주일 지났다. 나는 수능시험이라는 게 무조건적으로 무척 싫다. 시험을 볼 일 도 없고 시험치를 자식도 없지만 그래도 아주 아-아주 싫다. 수능시험이 다가오기 전에 기도를 부탁해 오는 부모님들 때문만은 꼭 아니다. 수능시험은 이제 대학 가기 위한 시험이기 이전에 하나의 거대한 장바닥이고 온갖 잡배들이 활개치고 소리쳐 대는 난장판의 지경까지 이른 것이 틀림없다. 불쌍한 우리 애들 시험보고 그 애들 뒷바라지하느라 속타는 부모님들의 애달픈 날이기 이전에 그 날에 맞추어 장사해 먹고살려는 사람들에 대한 야박함을 두고 하는 소리이다.




엿을 사주던 옛날 이야기로부터 잘 찍으라는 도끼며 포크, 그리고 잘 풀으라는 휴지, 서울대 가려면 소나타 뒤의 s 자를 떼어 가져야 한다고 남의 자동차에서 그 글자만을 떼어내던 거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았고 애교스럽기까지 했다. 금년 들어서는 격려의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동영상 서비스나 수험생들에게 보내는 음악메일 서비스, 수능합격기원문 서비스를 비롯 인터넷까지 한 몫을 단단히 했다. 뿐만 아니라 나아가 대학합격기원 상품권도 나왔고 급기야 어떤 정신나간 XX 화재라는 회사에서는 수능시험 점수를 예상하여 맞추면 현금으로 100만원을 주겠다고도 했다. 만화영화 영심이에서 영심이 오빠는 여자 팬티를 입으면 대학에 합격한다는 얘기에 영심이 팬티를 훔쳐 입고 공부하기도 했으며, 여러 점 집이니 역술관이 부적으로 대목을 보았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성당이나 교회 절에 이르기까지 각종 프로그램 아닌 프로그램으로 온 나라가 난리법석을 떨었다. 어떤 신발 회사는 이름 있는 무속인이 작성한 부적을 신발 양쪽에 달아 파는 가히 가공할 묘책으로 한정판매 특수를 누리기까지 했다한다. 그리고 그 시험이라는 게 지나가고 며칠 뒤 이 시험을 담당하고 지휘한 장관이라는 작자가 ‘쪼끔만 어렵게 내라고 했더니 너무 어렵게 문제가 되어버려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면서 비로소 이 대단원은 막을 내렸다.




우리는 이렇게 오랜 세월을 지내왔고 앞으로도 한 동안은 그렇게 지낼 예정이다. 나는 이런 나라가 싫다. 나처럼 이런 나라가 싫다고 떠나가서 이국 땅에까지 가서 다시 한 번 과외 지도 시키고 학원 만들면서 촌지 뿌려대는 극성스러운 ‘배-애달 겨레’도 싫다. 반면에 정말 난 이런 부모들 축에 끼지 않아도 될 무자식 상팔자니 그것 하나만큼은 정말 좋기도 하다. 그런 수능을 이미 넘겨버린 것도 무척, 아주, 매우, 다행이라 싶기도 하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이 나라에 태어나야 된다면 수능을 치루어야 되는 자식 둔 부모가 되기 싫어서라도 결혼은 하지 말아야겠다. 또 이런 입시철만 되면 기도 부탁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 하기가 어려워서, 또 가슴조리며 ‘기도빨’이 제발 좀 서기를 기도하기가 싫어서라도 아마 신부도 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이 모든 상황들은 결국 한 마디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불확실에 대한 두려움, 주변에 대한 두려움, 내 자식 밖에 믿을 것은 세상에 그 무엇도 없다는 두려움에서 기인한다. 도대체 대학 졸업장이라는 그까짓 종이 한 장이 뭐길래, 그것에 온 나라가 휘둘릴 필요는 없지 않느냐는 느긋한 여유와 자존심으로 이제는 자식 둔 누군가가 이 두려움의 고리를 끊기 시작해야만 된다. 그러지 않으면 결코 끊어지지 않을 두려움의 사슬을 이제는 정말이지 누군가가 끊기 시작해야만 한다. (2001.11.14)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