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경축사

 

나도 참 어지간히 할 일이 없는 사람인가 보다.


아니면 역설적으로 너무나도 사랑하는 나의 조국이요 민족이기 때문이라고
그냥 그럴 듯하게 거창한 이유라도 붙여보자.




무슨 얘기인고 하니, 그 동안 애써 구하던 지난 8.15 광복절 기념 김대중 대통령의 경축사를 나는 오늘에야 구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 시간에 그런 기념식이 중계되는 TV 프로그램을 보면 보통으로 다른 채널로 돌려버리거나 꺼버리는 것이 일반적인 상례일 것 같은데도 나에게는 그런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모르겠다. 괴팍스런 성격 탓일까? 이번 광복절 날에도 나는 그 중계를 일부러 보고 있었고 대통령의 연설을 유심히 듣다가 끝내 그 연설문을 구해 읽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었던 것이었다..




대통령의 연설문은 “존경하는 7000만 민족 여러분,”으로 시작하여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라는 문장으로 끝나며 총 99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그 중 전반부 45개의 문장에서는 햇볕정책, 주한미군, 일본 정부의 역사왜곡, 정치권(영수회담포함), 내년도 선거, 언론사 세무조사, 민주 인권국가 실현, 노동운동 합법화, 여성의 권리, 경제 위기와 IMF의 극복과 차관 조기 상환 등을 상황진단과 업적 나열식으로 열거하고 거론하였다. 그리고 나머지 54개의 문장 중 36개의 문장은 “촉진시키겠습니다, 정비해 나가겠습니다, 발전시켜가야 하겠습니다, 될 것입니다, 대책을 세우고 있습니다, 노력해 나가겠습니다, 개혁해 나가고 있습니다, 대폭 줄이겠습니다, 늘리겠습니다, 있도록 하겠습니다, 확대시키겠습니다, 실현해 나가겠습니다, 이루어지도록 하겠습니다, 보장하고 또한 지원하겠습니다, 노력하겠습니다, 획기적으로 확충해 나가겠습니다, 대책을 강구해 나가고 있습니다, 나갈 것입니다, 실시해 나가겠습니다, 강화해 나가겠습니다, 전면 개선하겠습니다, 방안을 강구하겠습니다, 적극 발전시켜 나가겠습니다, 확충해 나갈 것입니다, 해 나가겠습니다, 높이겠습니다, 건설하겠습니다, 융자하겠습니다, 제거하겠습니다, 개선시켜 나갈 것입니다, 힘쓰겠습니다,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지원해 나갈 것입니다, 적극 강구해 나갈 것입니다, 적극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노력하겠습니다.” 라는 단어들로 끝나고 있다.




아마 이 번 8.15 기념 경축사를 TV로 듣고도 부족해서, 전문까지 구해서 읽는 나 같은 사람도 드믈 것이다. 나는 우리 나라의 대통령이 광복절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목이 메이게, 또 숨가쁜 필치로 역사가 평가할 자신의 치적을 자기가 홍보해야 되고, 이렇게 저렇게 뭘 하겠다고 하는 것보다는 우리 민족이 오늘 날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만 될 것인가 하는, 말 그대로 큰 얘기를 할 수 있는, 그래서 정말 세계적으로 권위 있다는 노벨 평화상을 받은 대통령답게, 왕년에 이른 바 ‘선생’이라 불렸던 분처럼 얘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또 그런 날이 왔으면 하는 그런 바램을 가져본다. 그래봐야 김대통령님으로서는 내년 광복절밖에 기회가 또 없을 것이지만. (200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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