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일요일

 

로마에서 마지막 지내는 일요일이었다. 두 달간의 긴 회의라고 생각했었는데 어언 벌써 마지막 일요일이 되고 말았다. 시간은 그렇게 우리의 의지하고는 상관없이 정확히 자기 계획대로 갈 길을 간다. 그럼에도 내가 어찌 할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착각하고 사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리라.




마지막 지내는 일요일이지만 내겐 자유가 없었다. 마침 내가 속한 살레시오회의 한 분 신부님과 한 분 수사님, 그리고 한 분의 수녀님이 각각 시복되는 영광을 가지게 되셔서 새벽부터 베드로 광장으로 나가 교황님께서 집전하시는 시복식에 참석해야만 되었던 것이다. 며칠 전 이번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교황님의 특별알현 외에 며칠 뒤인 오늘 지척에서 교황님을 다시 뵐 수 있는 행운을 가졌다. 발음이 제대로 안되어 연신 침을 삼키거나 닦아가면서 말씀을 하셔야 하고, 심하게 손을 떠셔야 되며, 등이 몹시 구부러지셨고, 그 어떤 동작 하나도 스스로는 하시기에 힘들만큼 많은 사고와 불운을 겪으신 올해 연세 82세 되신 할아버지 교황님을 가까이서 뵈면서, 3시간 가까이 진행된 예식 동안 시종일관 그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내 자신과 베드로 광장을 가득 메운 수많은 인파들을 보면서, 줄곧 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 물음 하나가 있었다.




도대체 신자이건 아니건, 말이 통하건 통하지 않건, 남녀노소 그 누구를 불문하고 먼 발치에서나마 그분을 한 번 흘낏 보기라도 하려고 엄청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었다. 단지 가톨릭교회의 수장이라는 이유 때문이고, 저명인사요 역사적인 인물 중 한 분이라는 이유 때문일까? 이토록 많은 사람들을 한 순간에 모든 경계를 뛰어넘게 만들고, 열광시키며,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이유와 그 힘의 실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사람들의 환호 속에 구부러진 등으로 지팡이와 옆 사람에 의지하여 돌아서시는 교황님을 나도 모르게 어리는 눈물 속에 배웅해야 했던 이유가 하나 있었다면 그것은 분명 영적인 인간에 대한 경외심과 공감이었다. 사람들이 저마다 영으로 사는 사람 한 분을 만나고 싶은 그 갈망 하나로 그렇게들 몰려왔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진정 영으로 사는 한 분의 힘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느껴보려고 그렇게들 몰려왔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또한 나는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조금치의 부족함도 없이 풍요로움으로 충만하여 돌아갔다고 믿는다.




이 세상살이에서 잠시라도 고개를 젖히고 자신을 돌아보다보면 금새 가슴 저 밑바닥에 결코 채워지지 않은 영적인 갈급함으로 허덕이고 있는 우리 자신들에게 교황님은 어쩌면 마지 막 표상이고 상징이다.




교황님께 조금이라도 더 긴 건강을 주십사하고 하느님께 기도한다.(2002.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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