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날

 

봄날




오늘로 두 번째 일요일, 아니다. 세 번째 일요일이 맞다. 내가 이 곳에 토요일에 도착했으니 말이다. 주일인 오늘 꼼짝도 하지 아니하고 방구석에 틀어박혀 그렇게 하루를 보낸다. 어제까지 주적주적 내리던 비도 말끔히 갠 하늘이고, 이런저런 꽃들도 많이 피었으며, 또 새들의 소리도 유난히 창 밖에서 요란을 떠는 화창한 봄날 인데 말이다. 슬슬 나가볼까 하는 마음이 수도 없이 교차했지만, 그럼에도 별로 날아오는 메일도 없는 메일 함만을 열 번도 넘게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면서 결국은 방에서만 하루를 지냈다.




로마에서라면 17 년 전 이 곳에서 공부할 때 31명이 함께 살던 공동체의 식구들 중에서 내가 가장 일가견이 있던 작자였었는데…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이 문득 찾아든다.




꼭 피곤하고 교통이 다소 불편하다는 탓만은 아닌 것 같다. 밖으로 나돌아 다니는 것이 언제부터인가 더 피곤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것이 나이를 먹어가는 것일까? 아니면 춘천에서의 6년이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버린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원래 내가 그런 성품을 지닌 것이었던 것일까?




어제 인편으로 내 손에 전달되어진 엽서 한 장이 있었다. 나보다 나이도 훨씬 어린 수녀님 한 분이 로마에서 3년의 공부를 마치고 떠나면서 내가 여기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엽서 하나를 남겨 놓았었던 모양이다. 수녀님은 나를 애초부터 잘 알고 있었다는 듯이 ‘밖으로 찾으러 많이 다니기보다 마음 안 깊은 샘에서 맑은 물을 기르시라’고 썼다. 수도자적인 직관의 능력으로 그렇게 예견하고 썼는지, 그냥 우연스러운 인연으로 그렇게 썼는지, 아니면 정말 나를 잘 알아서 그렇게 썼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 엽서가 책상 한 쪽 구석에서 말갛게 나를 쳐다보고 있다.




이렇게 내 살던 곳을 떠나 맞아보는 이국에서의 봄은 내가 살았던 지난 날의 봄을 새삼 되새겨 보게 한다.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살았던 봄은 괜스레 어수선하기만 했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뭔가 모를 기대와 불안, 그리고 수선스러움으로 뒤죽박죽되어 지나가버렸던 기억들. 40대의 봄은 으레 그런 것일까?




나만의 방에서 가끔씩 창 밖으로 하늘을 쳐다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으로 그렇게 봄날의 주일 하나가 지나간다.(200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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