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앓이

 

봄 앓이




간밤에 시작한 비가 아직까지도 몹시 내린다. 갑자기 감기 손님이 찾아왔다. 며칠 전에 저녁 바람이 선선해서 앞뜰을 몇 바퀴 돌았더니 그게 화근이었나 보다. 침을 삼키기 어려울만큼 목이 아프고 열이 오락가락하고 그리고 콧물이 멈추질 않는다. 이렇게 계절이 바뀌면서 한 번씩 앓게 되는 감기를 따라 사람들도 나이테가 하나씩 생기듯이 그렇게 늙어가는 것일까? 그리고 그렇게 죽어가는 것일까?




그러지 않아도 며칠 전 어머니와의 전화통화가 전깃줄에 연이 걸려있듯이 그렇게 마음 한켠에 걸려있다. 나의 어머니는 올해 88세이다. 사실 남들이 누리지 못하는 건강으로 지금까지 잘 살아오신 편이다. 나는 그것을 가난했던 시절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잘 잡수셔서 생존해야만 했던 그런 결과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니면 유달리 떫은 감을 좋아하시고 쓴 것을 맛있다고 잡수셔야만 했던 그런 결과라고 생각한다. 어른이 되어서야 나는 떫은 감 보다는 단감이나 홍시가 더 맛있고 더 비싸며, 쓴 것 보다는 단 것이 훨씬 더 입에 넣기에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같다. 아마 그런 것이 철들고 어른이 되어가는 것일까?




그런 어머니께서 지난 달 하순께 쓰러지셔서 입원해 계신다 했다. 입원하고 한참이나 지나서 조카의 메일을 통해서야 소식을 듣게 되었다. 사실 지금까지 열여섯에 집나와 출가한 셈이었으니 어머니와 자식간에, 형제들 간에 뭐 그리 끈끈한 정이 있고 또 애지중지 할 만큼 얼기설기 정이나 연분이 있을까마는 그럼에도 한참을 지나 우연처럼 내 어머니의 입원소식을 들어야 하는 것은 인간적으로 아플 수 있는 회한이 된다. 물론 나에게 걱정 끼치지 않으려 했다는 배려였을지라도 말이다. 어차피 수도자의 삶이라는 것이 그런 것 일진데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것을 내가 그 동안 잘못 생각하고 살았던 것일까? 작년엔가 재작년엔가 내 생일 무렵에 당신 용돈을 3년간 곗돈 부어 모은 천만 원을 내게 보내시며 ‘내 죽기 전에 한 번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던 어머니의 마음이 새롭다. 반쪽이 마비가 된 채로, 골절까지 입은 상태로 어지간히 성미가 급하신 분이 말도 잘 못하게 되었으니 참 안타깝다. ‘나 아직 안 죽을 것 같아. 걱정 말고 회의 잘 마치고 와. 기도해.’하는 뜻으로 간신히 해석되는 말씀을 끝으로 더 이상은 전화할 용기를 못내고 있다. 올 봄은 이렇게 이래저래 봄 앓이를 하며 넘겨야 하나보다.(20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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