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초지종

 

그러니까 사람들이 내가 어찌하여 열 받았는지 궁금해 할 일이므로 이를 밝히는 게 도리인가 싶다.




서울에서 낮 1시 30분 대한항공 비행기를 타고 파리에 도착한 것은 열 두어 시간이 흘러 이 곳 시간으로 저녁 5시 30분 정도 였다. 바로 1시간 뒤인 6시 30분에 파리에서 로마로 가는 에어 프랑스로 부지런히 옮겨 타야 하는 것이었는데… 아뿔사. 비 내리는 빠리의 저녁 공항에서, 그것도 1시간의 여유밖에 없이 비행기를 갈아탄다는 것이 유럽 사람들의 생리를 어느 정도 아는 내가 볼 적에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거의 무모한 시도였다. 그 한 시간 안에 사람이야 옮겨 타겠지만 짐을 찾아 옮겨 싣는 것이 급할 것 없는 이 곳 사람들에게 상당히 무리가 따르는 상황이었을 것이라 추정되는 것이다. 그런 경우에 거의 짐이 사람과 함께 도착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아야만 정상일 것 같다.




아무튼 로마에 도착하고, 그렇게 공항에서 두 시간여를, 보이지 않는 짐을 찾겠다고 기다리다가 결국 세관에 짐 잃었다 신고하고, 이곳 살레시오의 총 본부에 도착한 것은 밤 11시 넘어서였을까 싶다. 악몽은 그 때 부터 시작이었다. 속옷을 갈아입지도 못하고, 바꾸어 입을 겉 옷도 또 양말도 없이 아무 것도 없이 그렇게 3일을 지낸 것이었으니… 그 처절하리만치 척척했던 3일의 몰골을 이루 다 서술 할 수가 없다. 그저 상상에 맡긴다. 나와 일행이었던 현신부는 털 많은 서양 사람이고 면도기마저 없어 3일 동안에 수염이라는 것이 수북하게 자라버리기 까지 했었으니 말이다. 그 동안 벼라 별 짓을 백방으로 다 하면서 짐을 찾았으나 끝내 오리무중이었고. 한국에까지 전화 한 끝에 그 짐이 로마 공항에 우리 도착한 다음 날 그러니까 일요일 아침에 도착했다는 것이었는데, 물론 그 날 일요일은 이태리 사람들의 관습으로 짐을 배달 할리가 만무한 것이고. 월요일 아침에나 배달해 주려니 했더니 그것도 아니었다. 월요일 저녁을 다 먹고 난 밤 9시가 되어서야 짐들이 나의 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게 짐을 받고 보니 이렇게 저렇게 없어진 소소한 것들도 있었고 말이다.




이번 기회에 ‘어디 갈 때는 겉옷도 속옷도 없이 가난하게 가야한다’던 예수님 말씀을 참으로 여러 번 되내었다. 그리고 반성도 좀 했다. 나는 왜 이렇게도 이런저런 것이 없이는 꼼짝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는가 하고 말이다. 그리고 거의 한계에까지 가게 된 나의 인내력을 점검할 수가 있는 좋는 기회였다 싶다. 거의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박차고 나서기 직전의 단계에까지 갔으니 말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아마 불란서나 이태리의 경제 사정이 아주 좋지 않은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저 머나 먼 동방의 작은 나라 한국이라는 곳의 가난한 신부 짐을 슬쩍 몇 개 털어가야만 되는 상황이 되었으니 말이다.




실로 오랫만에 돌아 온 로마에서의 두 달 일정을 난 그렇게 시작했다. (20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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