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사람들


생명의 사람들


   아침에 나를 아는 어떤 이가 전화를 해서 간밤의 꿈에 내가 죽어 장례를 치른다기에 슬프게 울었다면서 어찌 지내냐는 문안 전화를 해 왔다. 꿈속에서나마 내가 당사자가 되어 죽었다는 소리는 기분이 참 묘했다. 꿈 속에서의 죽음은 삶 속에서의 죽음을 경계하라는 계시일까? 생명이 약동하는 세상이요, 세상이 아름답고 살만하다고 믿으며 살아가고들 있지만 눈만 뜨고 나면 끔찍한 죽음의 소식들 천지이다.
  
   한 해에 몇 백만의 태아들이 소리 없이 죽어가는 것이라든가 자랑스럽지 않은 세계1위의 자살률이니 자살동호회니 하는 이 땅의 죽음이야기를 비롯하여, 먼 나라여서 다행이고 우리하고는 상관없을 것 같은 이상한 안도감으로 위로를 삼는 다른 나라의 죽음 이야기, 바로 우리 이웃에 있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도무지 사람들이 어찌 이럴 수 있을까 싶은 소식들이 계속된다. 끔찍하고 잔인하다는 표현 외에는 달리 묘사가 되지 않는 소식들이며 다시는 차마 입에 담아서 안 될 것 같은 소식도 아닌 소식들이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학생들 수십 명이 순식간에 총을 맞아 죽었다는 소식, 어머니의 목을 가방에 담아 와서 태연스레 내가 어머니를 죽였다고 자수했다는 어떤 자식의 소식, 귀가 길에 집 앞에서 사라졌던 사랑스러운 딸이 몇 십일이 지나 이웃 담장 밑에서 비닐봉지에 쌓여 발견되었다는 소식, 어렵게 먹여주고 키워 준 친할머니를 흉기로 살해했다는 중학생의 소식, 전쟁터에서 매일같이 죽어가는 한쪽 국민의 숫자만을 세다가 지쳐서 이제 그 숫자 세기가 더 이상 의미 없이 되었다는 소식, 몸에 폭탄을 두르고 스스로 몸을 던져 다른 사람들과 무더기로 죽어갔다는 소식, 급기야는 살아있는 동물을 퍼포먼스라는 이름 아래 여럿이 모여 처참하게 죽이고 좋아하며 박수쳤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도대체 이래도 되는 것일까,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나 싶어지며 문득 인간의 본성이 어디까지 악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생명의 세상에 죽음의 소식이 넘쳐나고, 감히 문화일 수도 없는 죽음의 문화가 우리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것만 같다.


   우리의 세상에 죽음의 문화가 기승을 부리는 것은 물질주의와 상업주의, 그리고 소비주의 때문이다. 돈이 되고 장사가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설령 인간의 생명까지도 사고팔며 이용과 폐기처분이 가능하다는 생각인 것이다. 이는 불치의 병을 고친다는 연구와 노력마저 국가적 기밀이고 산업이 되면서 급기야 기술로까지 전락하게 한다. 죽음의 사람들이 절대자의 영역을 침범하여 이를 조작하려들고 이를 통해 장사꾼의 돈벌이를 하려 드는 것이다.
  
   죽음의 문화는 근본적으로 이기주의와 쾌락주의에 그 뿌리가 닿아있다. 이는 나의 욕구충족을 위해 타인의 생명까지도 아랑곳하지 않는 사고방식을 동반한다. 인생의 목적이 행복에 있고 그 행복의 추구가 자아실현의 과정이라지만 그 자아실현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릴 필요가 없다는 사고방식은 참으로 위험하다. 여기에는 사회적 동물로서 살아가는 인간 사회의 공동체가 존재 할 수 없고, 윤리와 공동선의 원리, 그리고 나눔과 이른 바 연대(solidarity)가 존재 할 여지가 없다.

   죽음의 문화는 우리의 주변과 관계에 철저히 의존하는 소위 사회적 강박관념, 이를 묵인하거나 동조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이는 끊임없이, 그리고 점점 더 주변에 매달려 다른 이들의 평가와 시선에 급급하고 누가 내게 우호적인지 아닌지 하는 염려로 주변에 종속되면서 그런 강박관념을 벗어나기 위해서 미움과 시기, 조작, 권모술수, 사기, 질투, 사욕을 거침없이 일삼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의 사람들은 죽음, 허탈, 공허, 어둠, 슬픔에 대한 기억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지 않는다. 생명의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생명의 승리, 불신에 대한 믿음의 승리, 어둠에 대한 빛의 승리, 미움과 죄에 대한 사랑의 승리를 꿈꾸는 것으로 오늘을 산다. 생명의 사람들은 하늘 무서운 줄 알고 살며, 너와 내가 어우러져 비로소 내 삶이 완성된다는 믿음 안에 살며, 사회적 강박관념이라는 두려움에 구애받지 않고 살아간다.(2007년 6월 16일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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