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헨리 나웬 신부(3)


그것이 내가 헨리 나웬 신부님께 드린 첫 번째 드린 편지였고, 그때부터 난 그분이 몇 개의 박사학위도 가지신 분이고, 하버드, 예일, 노틀담 등 유명대학교에서 강의도 하셨던 분이셨으며, 1985년도에는 불란서에서 9개월여를 라르쉬 (L’arche)라는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철학교수였던 쟌 바니에(Jean Vanier) 박사가 세웠던 정신 장애를 가진 자들을 위한 공동체의 체험을 가진 뒤, 1986년부터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라르쉬 공동체 중의 하나인 “새벽(Daybreak)”이라는 공동체의 거주 사제가 되어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 그렇게 살아가시던 중에 갈비뼈가 5개난 부러진 교통사고를 당하셨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 모두가 1년에 한 두 번의 편지와 그분의 책들, 여기저기에 난 그분에 관한 기사들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지식들이다.


아프리카에서 1년도 못 채우고 돌아와 좌절과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던 나에게 밤을 꼬박 세우게 감동을 주었고 구체적인 저자와의 지면상의 만남을 시작하게 했던 “주님의 이름으로”라는 책의 이야기는 이렇다. 헨리 나웬 신부의 친구인 머리 맥도넬(Murray McDonnell)이라는 분이 토론토 근교의 “새벽” 공동체를 방문 했을 때 워싱턴DC에 있는 “인간 개발센터(Center for Human Development)” 창설 15주기 기념 강연으로 “21세기를 맞는 크리스챤 리더쉽”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해 줄 수 있겠느냐는 부탁을 하게 되었다. 그 센터의 창설자인 빈센트 듀이(Vincent Dwyer) 신부와도 잘 아는 사이이고, 주제도 맘에 들고 해서 그 강의를 해 주기로 수락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그 강의를 준비하던 중에 헨리 나웬 신부님은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짝지어 파견하셨는데 왜 나는 누구와 같이 이 강의를 해 낼 수 없는가를 고민하게 되었고, 몸담고 있던 “새벽” 공동체의 정신지체 장애인들과 이를 상의 하였으며, 그러한 발상에 공감한 공동체는 빌 반 버렌(Bill Van Burren)이라는 장애인과 그 강의를 같이 해 내도록 결정하게 되었다. 나웬 신부는 당시 신자도 아니었던, 그리고 떠듬거리는 말 몇 마디만을 할 수밖에 없었던 빌을 영세시키고, 첫영성체에 이어 견진성사까지 시켜가고 있던 처지였었다. 그러한 빌과 함께 나웬 신부님은 함께 강의하기로, 함께 복음을 선포하러 워싱턴으로 날아가기로 의기투합하게 되었는데, 정말이지 빌은 처음부터 자신이 나웬 신부의 그 강의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굳게 확신하게 된듯 하였다. 마침내 워싱턴으로 날아가던 날 비행기에 오르면서 빌이 나웬 신부에게 건넸던 말은 “우린 정말 이 일을 함께 하려는 거야. 그렇지?”였었고, 나웬 신부님의 대답은 “그럼, 빌, 그렇고말고”였었다.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 강의가 총 3장으로 된 “주님의 이름으로”라는 책의 내용이다. 그 책의 마지막 부분인 에필로그에 헨리 나웬 신부는 이렇게 적고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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