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헨리 나웬 신부(5)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난 헨리 나웬 신부님의 책이라면 닥치는 대로 읽었고 끌어 모았다. “주님의 이름으로”라는 책의 출판사에 편지해서 헨리 신부님께 전해 달라며 편지를 보낸 것이 계기가 되어 신부님과 편지들이 직접 오갔다. 그러던 1991년 살레시오 수녀님들의 연중 피정을 부탁 받고 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신부님께 하소연했더니 신부님께서 “사랑의 동그라미(Circles of Love)” 라는 작은 책 하나를 보내 주셨다. 그 책은 헨리 나웬 신부님의 과거 14권의 저서들 중 괜찮은 부분만을 죤 가비(John Garvey)라는 분이 편집하여 서문을 붙여 만든 62 페이지 짜리 책이다. 작고 얇은 책이기도 하고 묵상 노우트 같은 인상을 주는 손 안에 들어오는 책 이길래 헨리 신부님께 번역 출판허가를 청했다. 신부님께서는 흔쾌히 허락해 주셨고, 이에 이를 번역하여 생활성서사와 출판 작업에 들어갔는데 그 책의 출판 소유권을 가진 영국의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 출판사는 한국의 듣도 보도 못한 어떤 출판사를 지정해 주면서 먼저 그 출판사와 상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의 그 출판사는 헨리 나웬 신부님이 누구인지, 또 그 책이 어떤 책인지도 전혀 모른 채로 영국의 그 출판사에서 나오는 모든 책의 번역과 관련하여 소위 지적재산권을 통째로 구입하여 놓은 회사였다. 그리고 엄청난 인지세를 요구했다. 그래서 번역까지 마쳤던 그 책의 출판이 끝내 무산되고 말았다.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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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년 여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우리 수도회의 종신 서원자들을 위한 세미나가 있었는데, 그때 관구장 신부님이신 구천규 신부님과 커피 한 잔 하면서 우연히 헨리 나웬 신부님에 대한 얘기가 나왔고, 구신부님께서도 읽으시고 감명 받으셨다는 책이 이봉우 신부님의 번역으로 출간 되어 있다면서 종신서원자들에게 관구장으로서 헨리 나웬 신부님의 그 책을 선물하면 어떻겠느냐고 의향을 여쭈었다. 구신부님께서는 흔쾌히 그러면 참 좋은 일이 되겠다고 그 책을 나더러 주문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무려 100권에 달하는 이봉우 신부님의 번역본 “생활한 상기자로서의 사목자”라는 책을 분도출판사에 주문하였고, 그 책들을 구신부님 편에 모든 종신서원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라고 하며 드렸다. 그 해에 종신서원자들을 위한 세미나는 충남 태안에 있는 우리 바닷가 캠프장에서 있었다. 나 역시 종신서원자 중에 한 사람으로서 관구장 신부님으로부터 그 책을 이미 읽었지만 소중히 선물로 받았다. 그런데 잊지 못할 아이러니는 분배 후 그 다음에 빚어지고 말았다. 형제들이 돌아가고 난 뒤에 뒷정리를 하면서 나는 형제들의 방에 내팽개쳐져 있던 그 책들을 거의 100여권 고스란히 재수거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책의 제목이 한국말 같지 않아서였을까, 아니면 내용이 형편없어서였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저자가 형편없이 생각되어서였을까, 아니면 책이 너무 얇아 몽땅 다 읽고 암기가 되어 더 이상 보관할 가치가 없다는 생각에서였을까? 나는 지금도 그때 형제들이 어째서 헨리 신부님의 그 책을 그렇게 하나같이 내팽개치고 갔을까를 이해할 수 없다. 나에게는 그렇게도 감명 깊었던 대단한 책이 틀림없었고 자기 나라말로 똑같은 내용을 읽었을 구신부님께서도 그 책의 내용이 그렇게 좋다고 말씀 하셨었는데….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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