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달, 4월에

4월의 봄비가 내린다. 봄비는 생명의 비요 축복의 비다. 비가 그치고 나서 세상은 온통 녹색의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이런 생명의 달인 4월을 두고 ‘잔인한 달’이라 하는 유래를 학생들에게 물었더니 아무도 모른다. 신에게 영원히 죽지 않을 축복을 청하여 그 축복은 얻었으나, 싱싱한 젊음을 유지하는 축복은 얻지 못하여, 죽지는 않되 한 없이 늙어가는 처지가 되었음을 슬퍼하면서 봄날의 약동하는 생명 앞에서 제발 죽게해 달라고 빌었다는 내력을 아는 아이들이 요새는 없다.

그저 중간고사가 있는 달이라 잔인하고 미팅에서 폭탄 맞고 소개팅에서 퇴짜 맞아 잔인할 뿐이라는 어느 신입생의 우스개가 있을 뿐이다.

생명의 봄이라지만 이런 환절기에는 유달리 초상을 치르는 곳이 많다. 우리 수도원에 함께 살고 있는 분들 중에서도 이 땅에 오신지 딱 50년이 되신 외국인 할아버지 신부님 한 분이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 여든 여덟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점심 잘 잡수시고 맥주까지 한 캔 드신 분이 저녁 나절에 갑자기 호흡이 가빠지셔서 구급차를 불러 병원 응급실에 가시게 되었다. 병원에 가셔서도 힘이 넘쳐 주사를 놓거나 여러 처치를 하기에 힘들어 침대에 묶어야 할만큼 정정하셨는데 다음 날 아침 운명하시고 말았다.

신부님 장례식과 죽음의 의미

옛날 어려웠던 시절 선교사로 오셔서 외국의 원조를 끌어다가 이렇게 저렇게 기여하셨던 분이다. 사실 나 같은 사람은 그런 분들이 뒷주머니에 몰래 가져온 달러 덕분에 이제껏 공부하고 성장한 셈이다.

우리가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과 한강의 기적을 이야기하지만 피땀 흘린 노동자들의 수고와 함께 신부님 같은 분들이 알게 모르게 이 땅에 뿌려 준 달러의 힘이 제몫을 했다는 것도 어느 정도 인정해야만 한다.

돌아가신 신부님을 황망 중에 땅에 묻던 날, 모든 것이 허무하게만 느껴졌다. 무슨 일을 하였고 무슨 직책과 소임을 맡아왔건, 무슨 업적을 남겼든 말았든 그 모든 것이 그저 허망할 뿐이라는 생각이 앞섰다. 바로 어제까지 그 노인 신부님이 자기만 아는 것 같아 얄미웠고, 불쌍했었으며, 귀찮기도 했었고, 심지어 아웅다웅 신경전마저 벌이곤 했었는데, 그렇게 한 순간의 죽음으로 인하여 그 동안의 모든 논리와 생각들이 부질없었다는 생각, 허무하고 또 허무할 뿐인데 뭘 어쩌자는 것이었던가를 묻게 되면서 죽음 앞에서 할 말이 없었다.

이런 허무함 중에서 ‘의미’라는 단어 하나를 추켜들었다. 길바닥의 돌멩이 하나에도 의미가 있다고 여기면서 살아가는 내 삶이 죽은 다음에는 어떤 의미로 남을 것인가 하는 것만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신부님은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었으니 당신 믿었던 하느님을 향한 믿음 하나로 모든 것을 가름하고 의미를 가름하리라.

나는 생명 값을 다하고 사는가

신부님의 초상을 치르면서 다음으로 드는 생각은 두려움이었다. 내게도 언젠가 닥쳐올 죽음과 그 순간에 있을 지도 모르는 고통이 두려웠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이 삶과 나를 아는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내가 좋아하던 것들과 어느 순간 졸지에 이별해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웠으며, 내가 믿어 살아가는 하느님 앞에 나서기에는 너무 죄 많은 몸이어서 두려웠다.

내가 죽은 다음에는 필경 보이지 않는 삶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나만의 비밀이 낱낱이 공개되고 서로서로 알게 될 것만 같아 그 때 저승에서 만나게 될 이승의 인연들이 두려웠다.

신부님을 생각하니 괜스레 미안해진다. 5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특별히 미안하다는 생각이 깊이 들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번 신부님의 죽음 앞에서는 왜 이렇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나보다 먼저 죽어가는 사람들의 죽음에 별다른 이유 없이 죄책감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어머님의 죽음을 다시 돌아보게 되고 어머님께 죄송스럽고 미안했었다는 생각이 계속된다. 아마도 앞선 분들이 마친 생명의 연장을 살아가는 나로서 그 생명 값을 다 못하고 살아간다는 이유에서 일 것이다.(2008년 4월 19일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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