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살 동철이 이야기


24살 동철이 이야기

우리 수도회가 운영하는 한 직업전문학교에서 애들을 뒷바라지하고 있는 조카신부를 만났다. 약속 시간이 지연되어 헐레벌떡 나타난 조카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한다. 함께 살고 있는 이동철(가명)이라는 젊은이 때문이었는데, 2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의 환경은 참으로 기구하다. 12살 때 어머니가 가출하여 행방불명이고,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이다. 남동생은 지방의 한 복지시설에, 여동생은 행방불명이다. 나이가 차서 입대하였다가 여의치 않아 권고(?)제대를 당하였으며, 그렇게 24살이 되도록 살다가 얼마 전 어느 수녀님의 소개로 우리 집에 와 1년 동안 기술교육을 받고 있다.

우리 집에 함께 살고 있는 젊은이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두서너 달의 어려운 시기를 지나 반년 정도 지나면 그래도 마음을 잡고 교육과정을 마치게 되는 것인데, 그 반년을 넘기지 못하고 동철은 가출하고 말았다. 수소문하고 아이들 간의 연락을 염탐하여 조카신부는 역삼역 근처에서 4일 만에 동철이를 만났는데, 그는 길거리에서 살다보면 나게 마련인 냄새도 없이, 또 옷의 구김도 없이 비교적 말끔하게 나타났는데 여기저기 건물 옥상 같은 곳에서 옷이 구겨질까 싶어 벗어 개어놓고 신문지를 덮고 자며 지냈다 했단다. 하지만 지난 일요일의 점심이었던 라면 이후 김밥 한 줄이 그동안 식사의 전부였다.

– 어려선 결손가정서 기구한 삶 –

휴대폰도 사고 싶고 담배도 피워야겠고 하여 돈이 필요했던 동철이는 벼룩시장에서 ‘무담보 대출’ ‘돈 빌려드림’이라는 광고를 발견하고 전화를 했지만 주민등록번호 조회를 통하여 신용이 없으므로 돈을 빌려줄 수 없다는 답을 들었다. 그래도 어떻게 방법이 없느냐 물었더니 그 상담원이 친절하게도 각각 다른 5개 은행에서 통장 2개씩 10개를 만들어 보내 주면 즉시 현금으로 70만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했단다. 이에 동철이는 통장들을 만들어 보냈으며 아직 돈은 받지 않은 상태에서 겁이 나고 두려워하던 중 조카신부를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소위 대포통장들이 어느 곳에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지 매체들을 통해 알 만큼 알고 있던 조카신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다섯 개 은행을 돌아다니며 한 묶음씩의 서류를 쓰고 지워가며 그 통장들을 해지하느라 늦었다 했다. 그럼에도 마감시간 때문에 5개 은행 중 4개 은행만 가능했고 내일 아침 영업시간이 되자마자 나가서 하지 못한 나머지 은행의 통장들을 해지해야 한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겪지 않아도 될 경험을 너무 많이 하고 사는 동철이 같은 젊은이들이 의외로 많지만, 이 사회가 이렇게 돌아가서는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이 앞선다. 무책임한 결혼과 자녀들의 유기, 절대 빈자와 결손가정을 구제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의 미비, 이를 유혹하는 나쁜 사람들의 교묘한 술수와 광고들. 이를 이용해 돈벌이를 하고 쓰레기 같은 재산을 축적해 그 족쇄에 스스로를 묶어 허덕이는 사람들과 빤히 짐작하면서도 여기에 직·간접으로 동조하고 협조하는 사람들. 결국은 극단적인 양극화와 자본의 노예가 되어있는 이 사회. 우리는 그렇게 우리를 만들어 가고 또 그렇게 우리의 미래를 이뤄가고 있다.

세상이 원래 하느님 지으신 대로 보기에 좋은 세상이고 사람들은 본성적으로 악하기보다 선한 것이라고 믿으며 살아가려 애써 보지만, 그리고 과학자에게 탐구의 영역이 되고 인류의 문화발달에 기여를 하는 의심 대신에 아무짝에도 쓸 데 없는 것이 신앙인의 의심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동철이 같은 이야기를 듣다보면 가끔은 과연 세상이 아름다운 것이고 사람이 본성적으로 선할까 하고 의심이 든다.

– 커선 자본의 노예들 ‘먹잇감’ –

또한 우리의 희망과 미래를 이야기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카와 같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무슨 죄가 그리도 많아 이런 뒤치다꺼리를 하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싶어지기도 한다. 모쪼록 동철이가 다시는 가출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기를, 교육과정을 잘 마치고 자기 손으로 벌어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 법을 무사히 익혀 갈 수 있기를, 그래서 언젠가는 나름대로 괜찮은 가정을 꾸려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2008년7월4일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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