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절없이 또 가을의 끝자락


속절없이 또 가을의 끝자락


사람들이 나에게 많이 하는 인사말은 ‘바쁘시지요?’ ‘시간이 없으실 텐데…’ ‘귀한 시간 내 주셔서…’ 등이다. 이런 말들을 들으면서 ‘정말 내가 바쁜가?’ ‘바쁘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바쁜가?’ 하고 되물어 보게 된다. 따지고 보면 어떻게 1주일이 지나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 잠자리에 들기 전이나 일어나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 중 하나가 메모를 확인하는 것이다. ‘어떤 일정들이 있는가?’를 점검하느라 시간을 보내고, 시간이 없다면서도 ‘언제까지는 무엇을 하고 어느 때까지는 또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느라 상당 시간을 소비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안팎으로 몰아치듯이 다가오는 일들이 너무 많아 벅차고 마음이 바쁘다. 미국발 금융위기라는 난리에 온 세상은 아직까지 신음하고 있고, 촛불로 시작해서 용산으로 이어지던 불은 아직도 꺼지지 않은 채 해를 넘어가려 하고 있다. 4대강이 무엇이고 세종시가 무엇이며 도대체 어떤 것이 참말이고 거짓말인지도 모르게 만드는 정치는 사람들을 정신없게 만들고, 먼 나라 이야기인 듯 보이던 신종플루라는 두려움은 피부에 와 닿아 모두를 어찌 할 바 모르게 다그치고 있다. 세상이 바쁘고 세월도 바쁘다. 그 와중에 바빠야 되는 원인과 이유를 모른 채 나의 하루도 그저 바쁘게 그렇게 지나간다. 나와는 상관없듯이 그렇게 시간이 가고 사건이 흘러가면서도 그 시간과 사건이 나를 강하게 속박하는 것을 보면 나는 사건의 노예요, 시간의 종임이 분명하다.


세상이 바쁘니 세월도 바삐 흘러


속절없이 벌써 11월 하순이다. 오는 가을이 반가웠다 싶었는데 그 가을은 어느새 자기의 흔적을 지우느라 바쁘고, 새로운 계절은 위세를 떨치느라 바쁘다. 또 한 해인가 싶더니 어느새 그 한 해의 종장에 들어선다. 세월이 빠르다고 느끼기 시작한다면 이미 그것은 나이가 먹어가는 것을 실감하는 것이라고 했다. 30대에는 시속 30㎞이던 것이 40대에는 40㎞, 50대엔 50㎞…, 이런 식으로 나이와 지나가는 시간의 속도가 비례한다고 했다. 하루종일 양지쪽 한 구석에 앉아 동네 친구들과 놀던 어릴 적 하루는 그렇게도 많은 이야기를 담았고, 지금까지도 오래도록 기억되는 기나긴 하루였는데, 어른의 하루는 순식간이고 눈 깜박할 새이기 때문에 무엇을 하였는지도 모르게 후딱 지나가고 만다.


어린이의 하루가 기억에 담아가는 하루라면 어른의 하루는 망각에 지나가는 하루임이 틀림없다. 바빠서 시간이 없고 시간에 쫓겨 조급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어른들 특유의 생활방식으로 굳은 지는 이미 오래다. 일련의 사건 사고, 일지와 목록 내지는 연대기에 불과한 시간 안에서는 우리의 인생이 지루할 수밖에 없고 권태로울 수밖에 없으며, 자칫하면 끊임없는 긴장과 스트레스의 연속이 된다.


매일이 시간의 압박과 초조함 속에서 어제와 다름없는 또 다른 오늘이어서 지루와 권태를 넘어 우울로 나에게 다가오며 부질없는 일탈을 꿈꾸게 만든다. 순간순간이 끊임없는 가능성의 연속이고 재창조를 위한 에너지 충전의 기회여야 함에도 결국 피곤과 공허만이 남는다. 인생이라는 숙명론적인 권태가 이런 것일까?

‘오늘과 다른 내일’을 꿈꾸며 살자


시인 칼릴 지브란은 시간을 강처럼 여기고 강둑에 앉아 그 흘러감을 지켜보려 하는 것을 인간의 우둔함이라 노래하면서, 시간을 측량하려 하지 말고 어제는 다만 오늘의 기억이고 내일은 다만 오늘의 꿈임을 깨우쳐 시간을 초월해 사는 생명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 예언 같은 시인의 삶을 살 수 있는 인생이라는 것이 얼마나 될 것인가? 오랜 수련으로 단련된 자기정화로 생명의 고동소리와 맥박, 그리고 초침을 건드려주지 않으면 영원히 멈춰버릴 내면의 시간과 그 의미는 ‘아직은…’이라는 자위와 외면, 게으름 속에서 부단히 지금도 이 순간을 지나가고 있다.

겨울의 초입은 사람을 숙연하게 하고 착잡하게 만드는 속성을 지닌다. 시간의 신비 안에서, 그 시간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기도 속에서, 그렇게 시간은 자꾸만 자기의 노래를 부른다.(2009년11월 21일 경향신문)

“속절없이 또 가을의 끝자락”에 한개의 의견

  1. 좀 마음을 무겁게 하는 글이네요.
    가끔 아니 어쩌면 쉬지않고 부모들은 자녀들이 스스로의 생각을 할 시간도 주지않고 쉼없이 어른들의 생각들이 모두 옳은양 지속적인 간섭을 하기도 합니다.
    어제 저도 그런 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한창 꿈꾸고 즐겨야 할 아이를 힘든 과제속에 파묻히게 하였습니다.
    엄청나게 빠르게 지나가버린 지난 날들의 자국들이 지금도 마음속에 그대로 남아 심장의 아픈 부위를 누를때면 이런 늦가을의 바람 한자락에도 심장을 얼어붙게 만듭니다.
    그대로 앞만 보고 가고 있는데 앞에 뭐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또 파이팅해야겠죠?
    플루조심하시고 건강 꼭 챙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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