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론(將帥論)


장수론(將帥論)




현대 사회 안에서 ‘리더십’이나 ‘지도자의 자질론’을 이야기하려고 할 때에 이를 옛날 버전으로 이야기 해 본다면 ‘장수론’ 쯤에 해당이 될 것 같다. 그렇게 ‘장수’라고 할 때엔 무엇보다도 도원결의(桃園結義)에서 형제애를 맺음으로 시작되는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삼국의 혼란기에 수많은 장수들이 등장하여 싸움을 벌이게 되는 단초가 되는 장면에 서 있는 늠름한 사나이들의 의기투합이 멋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 세 의형제의 이미지가 선뜻 덕(德)·지(智)·용(勇)을 상기시키는 때문이다. 물론 세 의형제가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배반함이 없이 그 의리를 서로 지켰다는 점에서는 모두 아름다운 인간 사회의 본(本)의 하나를 표상하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유비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다른 두 형제를 아우르는 덕스러운 자요, 관우는 문무가 겸비된 균형으로 이쪽저쪽을 가늠할 수 있는 슬기로운 자이며, 장비는 용맹과 기개로 불같은 추진력을 갖춘 자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다소 억지를 더하여 감히 유비를 덕장(德將)의 표상, 관우를 지장(智將)의 표상, 장비를 용장(勇將)의 표상이라고 가정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소위 ‘장수론(將帥論)’은 시작할 명분을 일단 갖춘다.

현대 사회 안에서는 애초에 장수도 아닌 사람이 세월이 가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장수의 위치에 가 있어 소위 리더십을 발휘해야만 하는 운명적 상황을 맞이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런 이들은 자기가 장수가 아니니 원만한 처세를 통해서 유용한 리더십을 갖춘 장수들을 기용해야만 하는 것인데, 그때에도 이하의 소위 ‘장수론’은 유용한 도구일 수 있다.

1. 덕장(德將) : 덕장의 자질은 성덕과 거룩함이다. 덕장은 하늘이 낸 사람이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주변을 편안하게 해 준다. 범접할 수 없는 권위와 위엄, 그리고 소박함으로 말 없는 중에도 주변을 압도한다. 배운 자나 못 배운 자, 남자가 되었건 여자가 되었건, 나이가 많던 적던, 마음이 모질지 못하여 자상한 배려로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다.

2. 지장(智將) : 지장의 자질은 전략과 기획력이다. 곧잘 성질이 더러우나 세속적으로는 성공한 사람에 해당이 되기도 한다. 자수성가(自手成家)의 표본일 경우가 많고 어떤 분야가 되었든 소위 ‘일가(一家)’를 이루어낸 사람들이겠고 사회를 발전시킨 사람들에 해당이 된다. 오늘날 사회의 많은 CEO 들은 덕이 출중한 사람들이라기보다 지략이 뛰어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3. 용장(勇將) : 용장의 자질은 기개와 의리이다. 설령 장렬한 전사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공중분해를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명분을 위해서는 끝까지 가야하는 사람들이다. 어떨 때는 결과적으로 실리를 취하지 못하면서 제 풀에 겨워 개죽음으로 자신의 생을 마감하기도 하는 사람들이다.

세상에는 장수가 아니면서도 어찌어찌하다가 장수의 위치에 가 있는 사람, 결코 넘보아서도 안 되고 넘볼 이유가 없는 사람이면서도 장수의 위치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 그리고 자의가 되었든 타의가 되었든 이미 장수가 되어 자신의 소명을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장수가 아니면서도 장수의 위치에 가 있는 사람들의 운명은 답답하다. 자기가 그러한 자리에 가서는 안 될 사람이면서도 이미 여러 사람을 희생 시키는 자리에 가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어쩌다가 나이 들면 자연스럽게 가게 되는 ‘뽀대’나는 자리에 가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개 지장이나 덕장으로 가장(假裝)하는 경우가 많다.

지장이 아니면서도 지장을 흉내 내는 사람들은 쥐뿔도 아는 것이 없고 알 수도 없는 자질을 갖추었으면서도 조직의 우두머리가 되었기에 그때그때 의사결정을 해 주어야만 하는데,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괜히 부하를 향해 목에 핏대를 세우거나 목을 뻣뻣하게 세워 개폼을 잡는 무게로 장수인 척 하기 때문에 괜히 가까이 하기가 어렵다. 이들은 흔히 소위 사회의 성공한 사람들이 으레 지장이고 카리스마적인 사람임을 눈치로 짐작해서 알고 나서는, 그에 상응하는 외형적인 모습을 흉내 내는 것으로 소일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우매한 조직의 하부 구성원들은 ‘저 정도 자리에 가 있으니 이미 내가 모르는 무엇인가가 있는 사람’임을 무의식중에라도 인정하고 감히 들이댈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 또한 상례이다. 흔히 지장이 아니면서 지장을 흉내 내는 사람들은 줏대가 세다는 것으로 포장한 고집을 내세운다. 옹고집이고 똥고집이다. 그리고 재치 있는 농담과 익살, 해학인척 뽐내다가 ‘사오정’이 되기가 일쑤이거나 아니면 상대방의 기분을 아랑곳하지 않아서 상대방의 기분을 잡쳐놓고 마는 경우도 많다.

덕장이 아니면서도 덕장을 흉내 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저 일단 처세술에 능한 경우가 이에 해당하는데, 누구에게나 호탕하게 웃기를 좋아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가진 듯이 비쳐지며, 말이 잘 통하는 사람처럼 여겨진다. 아랫사람들과 회식 자리가 즐거운 사람들인데, 즐거워서 즐거운 것이 아니고 술을 마신다는 것과 무의식중에라도 ‘내가 거느리는 사람들’과 함께 해서 즐거운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러한 처세술은 보통으로 3개월, 적어도 6개월이 되지 않아 들통이 나고 만다. 아랫사람들이 말은 하지 않지만, 그가 가짜인 것을 은근히 알아버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본인만이 처세를 잘 하고 있는 듯이 착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도자의 자질은 얄팍한 처세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용장이 아니면서 용장임을 흉내 내는 것은 가관(可觀)이다. 지장이 아니면서 지장인척 하는 경우나 덕장이 아니면서 덕장인척 하는 것은 그래도 겉으로 요란스럽지는 않은 경우가 많은데, 용장이 아니면서 용장을 흉내 내는 경우엔 떠들썩하고 입가에 게거품이 생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진짜 용기가 자신감과 긍지 내지는 자존감에서 비롯하는 것임에 비해 가짜 용기는 허황한 허세이고 뻥이며 뒤집어보면 교활하고 간사한 비겁함일 때가 많다. 이런 이들은 거칠거나 과장된 몸짓으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내뿜지만, 누군가가 막상 들이대면 내공이 가득한 든든함으로 저력을 과시하기보다는 가만히 꽁무니를 빼고 만다. 대부분 쉬운 말로 ‘아니면 말고!’라는 냉소나 ‘무조건 반대!’라는 치기(稚氣)로 자신의 용기 아닌 용기를 부려대기도 한다.

실제 장수의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민과 고뇌는 보통으로 덕·지·용, 3가지를 한 몸에 고루 갖추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기가 가지 않은 길, 곧 자기가 지니지 못한 자질을 넘보거나 그리워하는 것이다. 덕장은 지장의 현명함이나 용장의 화끈함을 그리워하고, 지장은 덕장의 원만함이나 용장의 배포를 그리워하며, 또 용장은 덕장의 형님스러움과 지장의 명민함을 그리워한다. 어설프게 장수가 되었다가 이쪽저쪽을 넘보거나 따라 해 보다가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우로 남아 결국엔 실패한 장수가 되어버리는 경우도 허다한 것이 사실이다. 일단 장수가 되었으면 장수로서의 나의 자질이 어느 쪽이고 어디까지가 내가 해 낼 수 있는 몫인지를 가늠해야 하고 어느 정도 쯤에서 만족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는데, 이것 또한 쉽지 않다. 그래서 이런 것을 올바로 지적해 줄 수 있는 참모들이라도 곁에 둘 수 있는 장수는 참으로 행복하다. 자기가 장수가 아님을 올바로 직면하면서 장수들을 적재적소에 기용하는 요령이라도 발휘하다보면, 그러한 과정 속에서 어느새 장수가 아니었던 자신을 스스로 장수로 만들어가는 체험을 하면서 장수가 되어가는 사람들도 있다.(2014년 4월 말, 쓰다가 다 쓰지 못하고 계속 써 나가고 있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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