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세월호!


아, 세월호!



이럴 수는 없다 싶었다. 말도 안 된다 싶었다. 죽지 않을 수 있는 축복을 얻었음에도 늙어가지 않는 축복을 함께 청하지 못해, 오는 세월 속에 하염없이 늙어만 가는 잔인함을 언제까지고 살아야 하는, 그래서 시인의 말 그대로 ‘잔인한 4월’이었다. 아니다. 젊음을 유지하지 않아도 좋고, 어디 한 구석이 망가져도 좋으며, 속절없이 늙어만 갈지라도 살아만 있으면 된다는 바램 속에 거친 바다를 언제까지나 바라다보아야만 하는, 그래서 우리의 4월은 더더욱 잔인하였다. 봄바람이 스산하여 왠지 모르게 불안 불안한 채로 그렇게 가까스로 4월을 절반 갓 넘겼을 때, 그렇게 우리의 잔인한 4월은 몰아쳤다.

그날 아침, 10시 17분 아이의 마지막 말은 ‘기다리래!’ 라는 순진한 네 글자였다. 그렇게 아이들의 마지막 기다림을 어른들은 여지없이, 무참하게, 그리고 너무나도 잔인하게 무찔러버렸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지도 모르는 아이들의 순진함 앞에서 돈 되는 일이면 그 무엇도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물질만능주의, 그 누구도 상관없이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이기심, 인간은 경험으로 생명의 영역을 확장해가는 동물이어서 수도 없이 많은 경험 속에 이제는 배웠을 법도 한데 그때그때 차곡차곡 교훈을 얻지 못하고 막연한 방관으로 지나쳐버렸던 임기응변과 무지몽매(無知蒙昧)함, 나 하나가 뭘 어떻게 한다고 달라질 것이 없으니 동조하거나 포기하며 쌓아간, 그래서 우리를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린, 거대한 힘의 횡포요 사회적구조악이라는 올가미, 이런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난장을 피웠다.

그리고 그 난장판에 오늘까지도 우리의 눈과 귀를 붙잡아두고 있는 언론도 너무했다. 아무리 언론이 근본적인 근원을 파헤치기보다 생태적으로 선정적이어야만 하고, 갈등의 양상과 과정을 강조하는 경향을 지녔으며, 해결이나 조정에 나서기보다 갈등을 조장하고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고는 하지만 언론도 줏대 없는 춤을 여지껏 계속 추어대고 있다.

아만다 리플리라는 신문기자가 그랬다. 눈앞에 다가온 엄청난 재앙 앞에 선 인간은 맨 먼저 ‘거부(denial)’ 한다고. 물에 잠겨 숨이 막히고 손가락 마디들이 부러지는 고통 속에서 우리 아이들도 거부하였을 것이고, 지금 남아있는 우리들도 결코 이건 우리들에게 닥친 위험이 아니라고 거부하고 부정(否定)하고 있다. 그러다가 인간은 또 찬찬히 생각하게 되는 ‘숙고(deliberation)’의 과정을 거친다 했다. 애들도 그랬을 것이다. 내가 타고 있는 배가 뒤집힌 것임을 생각했을 것이고, 이 상황에서 내가 죽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공포 속에 있으면서 소리를 질러대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했을 것이다. 눈이 짓무르게 바다만 바라보면서 남아 있는 우리도 울다가 웃다가, 소리를 지르다가 또 머리를 떨구고 땅만 쳐다보다가, 어찌해야 살아남을 것인가를 생각한다. 기자는 계속하여 마침내 인간은 ‘결정적 순간(decisive moment)’을 맞이한다고 했다. 우리 애들도 자신의 한계를 넘어가는 거대함 앞에서 공황 상태가 되거나 마비가 와서 꼼짝도 못하다가 어처구니 없는 죽음을 맞았거나 아니면 버둥거리며 그 상황을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또 쓰다가, 그렇게 죽음을 맞았을 것이다. 애들은 그렇게 죽어감으로 결정적인 상황을 맞이했지만, 죄 많은 우리는 살아남아, 물밖에 있어서, 오늘도 하늘에 떠 있는 해의 밝은 빛 아래에서 ‘그 다음’의 결정적인 순간을 맞는다. 우리도 뭔가를 결정해야 한다. 기자는 그 결정적 순간에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오로지 그 결정을 몸에 배이게 하는 평상시의 훈련과 사회적 차원의 ‘교육’뿐이라고 했다.

우리도 남은 ‘세월’을 눈물만 흘리다가 말라비틀어져 애들처럼 죽어버릴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그렇게 2014년 4월이 되어졌어야만 했던 원인 찾기, 나 아닌 너의 탓이었다고 변명하며 결국은 자신을 찔러대고 말, 탓하기를 넘어야 한다. 살아남은 비겁자요 방관자라는 죄책감 속에서, 정말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며, 그나마 몇 명이라도 구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구해진 자들로 대변되는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그 건너편에 있는 사람들이, 그나마 이 모든 일들의 증인으로 살아남아 주어 고맙다며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앞으로는 우리들이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말로만이 아니라 몸으로 보여주어야만 한다. 말하는 대로 살고 사는 대로 말하겠다고, 한 번만 더 믿어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며 그렇게 살아야 한다. 그렇게 해서, 죽어간 이들이 짧은 세월 동안 이 땅에 남긴 삶의 흔적을 그들의 이름으로 계속 이어가야만 한다.(2014년 5월 청소년의 달 어버이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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