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未安

‘나무 목木’이라는 글자가 땅 밑에 세 가닥으로 뻗어나간 뿌리 모양과 땅 위로 솟아오른 줄기나 가지의 모양이라는 것쯤은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들도 안다. 그 ‘나무 목木’의 땅 위로 솟아오른 줄기에 어린 가지 하나를 걸쳐 놓으면 ‘아닐, 혹은 끝 미未’가 된다. 아직 튼튼한 가지가 되지 않았고 가지 끝에 돋아난 또 다른 가지이기 때문이다. 그 어린 가지를 자르는 모양을 더해 놓으면 자른 나뭇가지의 중심이 붉다 해서 ‘붉을 주朱’가 되고, ‘나무 목木’에서 땅 밑에 단단히 박은 세 가닥 뿌리에 가로로 한 획을 그어놓으면 뿌리를 강조하는 것이 되면서 나무만이 아니라 모든 것의 근본이라는 뜻을 담은 ‘근본 본本’이라는 글자가 된다.

‘미未’라는 글자는 나무 끝의 가느다란 작은 가지의 모양에서부터 나와서 ‘분명하지 않다’ ‘희미한 모양’ ‘아직…하지 않다’, 그리고 아직은 되지 않았으니 장차 될 것임을 암시하여 미래未來라는 뜻으로까지 나아간다. 말 그대로 ‘미래未來’는 ‘올 래來’와 함께 아직은 아니지만 장차 다가올 시점이고, ‘미완未完’은 ‘완전할 완完’과 함께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며, ‘미망인未亡人’은 ‘망할, 없을 망亡’과 함께 배우자인 남편과 더불어 죽어야 하지만 아직 죽지 못한 사람이라고 남편 잃은 여인이 누군가에게 자신을 낮춰 하는 말이 되고, ‘미구未久’는 ‘오랠 구久’와 함께 그리 오래지 아니함을 말하고, ‘미안未安’은 ‘편안할 안安’과 함께 누군가를 괴롭혀서 내가 편안하지 아니함을 말한다. 처세로 그저 한 마디 하고 넘어가자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내가 누군가에게 ‘미안하다’고 얘기하는 것은 ‘내가 너를 괴롭혀서 내가 편안하지 않으니 나를 편안하게 해 주세요!’라는 뜻이어서, 상대방의 너그러움과 용서를 받으려고 청하고 사정하는 것이다. ‘미안未安’을 이루는 ‘편안할 안安’은 ‘집 면宀’과 ‘여자 여女’로 이루어진 말이므로 ‘집에 여자가 있으면 모든 것이 평안하다’는 식으로 풀이를 하지만 다소 옹색하다. 오히려 ‘집 면宀’을 사당이나 신전과 같은 집으로 보면, 그 안에서 신의 뜻을 찾으려 기도하는 여인의 모습을 그리는 것으로 풀어서, 그렇게 기도하고 신의 뜻을 찾다보면 편안해 진다는 의미로 새기는 것이 유용할 듯하다. ‘편안할 안安’은 그래서 ‘편안하다, (신의 뜻을 알고)즐거움에 빠지다, 어찌, 이에(이에, 그래서 내, 노 젓는 소리 애乃), 어디에, 안으로, 속으로’ 등등의 뜻을 지니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미안’은 누군가를 두고 내 마음을 헤아려 신의 뜻을 추구하는 것이다.

에릭 시갈Erich Sigal(1937~2010년)의 소설을 두고 만들어져 겨울이면 항상 생각나게 하는 1970년의 영화 Love Story는 “사랑은 미안하다 말하는 게 아냐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라는 명대사를 가르쳐주었지만, 그렇게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이심전심으로 너의 불편한 마음을 알고도 남는다는 뜻을 가르쳐주기 전에, ‘미안하다’는 말에 인색한 사람들이 되도록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부자는 불의를 저지르고도 큰소리를 치지만 가난한 이는 불의를 당하고도 사과해야 한다.”(집회 13,3)고 했다. 하느님 앞에 선 인간이 자기 불쌍한 줄을 알면 알수록 사람들에게도 미안한 것들이 너무 많아져서 미안해하지만, 자기 가련함을 모르면 모를수록 미안해하고 말 것도 없어서 뻔뻔해지고 거들먹거리며 큰 소리를 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미안해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나를 가련히 여기시도록 하는 기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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