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잠할 묵默

‘잠잠할 묵默’은 ‘묵黙’과 같은 글자이다. 뜻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음音을 나타내는 ‘검을 흑黑’과 ‘개 견犬’이 합하여 이루어진다. 개(개 견犬)가 소리를 지르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다는 것인데, 어둔 밤(검을 흑黑)에 검정색 개가 가만히 있는 것을 상상하면 대충 이해가 간다. 그래서 생겨난 ‘잠잠할/묵묵할 묵默’은 어떤 이가 말을 하지 않는 상황이다.

‘묵默’이라는 글자의 부분인 ‘검을 흑黑’은 사람이 서 있고 그 얼굴과 온 몸에 검게 칠한 상황이다. 칠은 숯이나 검댕이로 한다. 곧 얼굴과 온 몸에 숯으로 칠하는 것인데, 이는 죄인을 벌하는 형벌의 일종이다. 그렇게 생겨난 검정색의 의미는 ‘나쁘다, 저녁, 은밀한’의 뜻으로까지 나아간다. 글씨를 쓰기 위해 숯검정과 흙으로 만든 ‘먹 묵墨’이라는 글자도 ‘검을 흑黑’ 밑에 ‘흙 토土’를 붙여 그렇게 생겨났다. ‘검을 흑黑’에 ‘입 구口’를 붙이면 ‘입을 다물다’는 뜻이 되어 ‘잠잠할 묵默’과 거의 같은 ‘고요할 묵嘿’이 된다. 그래서 ‘묵默’은 ‘묵嘿’이다.

인류의 역사 안에서 소위 수도修道 정진하는 이에게 가장 중요한 글자 하나를 꼽으라면 그것은 ‘묵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이 ‘묵默’과 조합하여 만들어진 침묵沈默, 묵인默認, 묵념默念, 묵도默禱, 묵묵默默, 묵상默想, 묵묵부답黙黙不答, 묵살默殺 같은 말들은 무게감을 지닌다.

성철性徹(1912년~1993년) 큰 스님께서도 당나라 때의 승려 영가현각永嘉玄覺 대사大師(637/665~713년)의 시편으로 알려진 「증도가證道歌」를 해설하실 때에 ‘말씀 설說’과 ‘고요할 묵默’으로 선禪의 오묘한 경지에 관한 가르침을 주셨다. ‘말 없을 때 말을 하고 말을 할 때 말 없음이여默時說說時默(묵시설설시묵)’ 하신다. ‘묵이 곧 설이고 설이 곧 묵이라’ 하신다. 『…적적한 가운데 광명이 있고 광명이 있는 가운데 적적함이 있어서 말과 묵이 완전히 통하는 것…그리하여 죽음 가운데 삶이 있고 삶 가운데 죽음이 있는 것과 같이, 움직임 가운데 머무름이 있고 머무는 가운데 움직임이 있어서 움직임이 머무름이고 머무름이 움직임이며, 진(眞)이 곧 가(假)요 가(假)가 곧 진(眞)…이와 같이 모든 양변이 원유무애圓融無愛하고 융통자재融通自在한 것을 표현하여 ‘묵묵할 때 말하고 말할 때 묵묵하다’고 한 것이니, 이것은 전체에 다 통하는 것…』이라 하신다.

‘묵默’은 말이 없어도 백 마디 천 마디 말이 있는 것이나 다름없고, 백 마디 천 마디 말이 있어도 조용함이다. 너와 나에게 모두 넉넉한 웃음이다.

그리스도교는 “말씀이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음”(요한 1,14)을 믿는다. 성경이 “침묵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코헬 3,7)라고 하는 것은 오로지 ‘들어서’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함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의 ‘묵默’은 ‘들음’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들음이다. 그래서 생명이 있는 사람이고자 함이다. ‘묵默’이라는 글자 하나에 이렇게 죽음도 있고 생명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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