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할 소疏

‘소통할 소疏’의 원래 글자는 ‘벌릴/멀리할/트일 소踈’ 혹은 ‘성길 소疎’인데, 이를 잘못 썼다는 뜻에서 ‘踈=疎’의 ‘와자訛字’라고 한다. 이 글자들의 왼쪽에 붙어있는 것은 ‘발 족足’의 변형인 ‘발 소疋(발이 한 쌍이라는 의미에서 ′짝 필′이라 하기도 한다)’이다. ‘발 족足’은 장딴지 모양을 나타내는 ‘입 구口’ 모양과 발을 나타내는 ‘그칠 지止’자가 합쳐진 모양이다. ‘발 족足’에 ‘묶을/약속할 속束’을 붙여서 비로소 ‘소통할 소疏(踈=疎)’라는 글자를 만든 것이다. 무엇에 무엇을 묶어놓은 상태이지만 이 다리 저 다리 두 다리가 따로 놀 듯이 엉성하고 느슨하며 빠져나가기 쉽고 사이가 트여 성기게 묶어놓은 상태이다. 와자訛字이건 아니건 ‘흐를 유/류㐬’를 붙인 것도 의미가 있다. 물이 흐르듯이 술술 풀리고 통하는 것이라는 뜻의 ‘소통할 소疏’이니 말이다. ‘흐를 유/류㐬’는 아기가 태어나는 모양으로서 아기가 양수와 함께 ‘순풍’ 하고 순조롭게 흘러나옴을 뜻한다. 다소 비약이지만, 아기는 보통 머리부터 세상으로 나오는데, 그렇게 해서 마침내 발(足)까지 무사히 빠져나오면 원만하게 모든 것이 흐른다는 뜻에서 소통의 ‘소疏’가 되는 것일까?

‘소踈=疎(=疏)’라는 글자들에서 왼쪽에 붙은 ‘발 족足’을 뺀 ‘묶을/약속할 속束’은 말 그대로 무엇을 무엇에 합치거나 감고 동여서 꽁꽁 묶어놓은 상태로서 우리가 약속約束이라 할 때의 ‘속束’이다. 단단히 묶어야 할 ‘속束’이 ‘발 족足’과 만나면서 헐거워진 묶음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을 안고 있는 ‘소통할 소疏’를 펼쳐놓고 보면 ‘발 족足(=발 소疋)’과 ‘흐를 유/류㐬’의 합자이다. 두 다리 사이로 물이 흘러가듯이 잘 흐르는 상태이기도 하고, 무언가 흐름을 방해하는 둑이나 담벼락과 같은 것을 발로 허물어뜨린다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글자에 ‘소홀히 할 홀忽’을 붙이면 ‘소홀疏忽(=疎忽)’이 되어 데면데면하고 가볍거나 하찮게 여겨 관심關心을 두지 않는 상태이고, ‘밝을 명明’을 붙이면 ‘소명疏明’이 되어 판사 앞에서 당사자當事者의 입장을 변명하는 것이며, ‘열/평평하게 펼 개開’를 붙이면 ‘소개疏開’가 되어 밀집된 상태를 펼쳐 분산한다는 것이고, ‘엷을 박薄’을 붙이면 ‘소박疏薄’이 되어 남편이 아내를 박대하거나 아내를 아내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며, ‘멀 원遠’을 붙이면 ‘소원疏遠’이 되어 누군가와의 사이가 멀어지고 서먹서먹 해 지는 것이고, ‘청할 청請’을 붙이면 ‘소청疏請’이 되어 높은 분에게 무엇을 알려 청하는 것이며, ‘벗을 탈脫’을 붙이면 ‘소탈疏脫’이 되어 자잘한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수수하며 털털한 모습이고, ‘바깥 외外’를 붙이면 ‘소외疏外’가 되어 사이를 따돌려 멀어지는 것이며, ‘통할 통通’을 붙이면 ‘소통疏通’이 되어 너와 나의 마음이 통하여 가까워진 상태이다. 뒤에 붙이는 글자들 말고 앞에 붙이는 글자로 ‘날 생生’을 앞에 붙이면 ‘생소生疏’가 되어 어떤 사물이나 상태에 익숙하지 못하여 낯선 것이고, ‘윗 상上’을 앞에 붙이면 ‘상소上疏’가 되어 임금 등에게 올린 글을 말한다.

사연 많은 ‘소통할 소疏’라는 글자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이나 세상, 그리고 인간과 하느님 간의 흐름에 관계되는 글자이다. 거기에는 물 흐르는 곳에 두 다리로 서 있는 사람이 있고, 막힌 둑이 있으며, 태어나는 아기가 있고, 무엇인가를 매듭지어 묶은 묶음이 있으며, 복잡다단한 인간사가 담겨있다. 수천 년을 두고 인간에게 당신의 뜻을 밝히셨으나 소통이 안 되어 답답하신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셨을 때 그분은 요르단이라는 강물에 그렇게 당신을 드러내시고, 죄 많은 사람들과 함께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하늘과 땅 사이의 둑을 허무시고,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시며, 마침내 하늘의 소리가 인간에게 들리게 하셨다.(마태 3,13-1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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