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 간間

‘사이 간間’은 ‘문 문門’과 ‘날 일日’이라는 글자가 합해진 것이다. 門의 작은 틈 사이로 햇빛(日)이 비쳐 들어오는 것을 나타내면서, ‘사이’ ‘시간의 틈’ ‘동안’이라는 뜻으로 이쪽에서 저쪽까지의 사이를 말한다. 원래 이 글자는 문門 가운데에 ‘달 월月’을 쓰거나, ‘밖/바깥 외外’를 쓰기도 하였다. ‘달 월月’을 쓰게 되면 말 그대로 달빛이 문틈 사이로 비치는 것이고, ‘밖 외外’를 쓰면 밖으로부터 틈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나 달빛이겠다. 그런데 문門 속에 ‘달 월月’을 쓰면 ‘사이 간/한가할 한閒’이라 하면서 ‘한’으로 소리가 나기도 하므로 ‘사이 간間’과 구별하기 위하여 ‘나무 목木’을 사이에 넣어 여가나 조용하다는 뜻을 담아 ‘한가할 한閑’을 따로 쓴다. ‘한가할 한閑’은 ‘막을 한閑’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말이나 소와 같은 동물을 우리에 가두고 나무로 빗장을 질러 막아 마음이 놓이는 상황이다.

‘사이 간間’은 간격으로 보면 작은 틈새이고 시간(때/짬)으로 보면 잠깐이다. 잠깐이라는 뜻을 우리 말로 풀면 ‘어느덧’, 혹은 ‘덧없다’ 할 때의 ‘덧’이다. 그래서 ‘덧없다’는 ‘사이가 없다’ ‘동안이 없다’이고, 그래서 ‘항상 변한다’는 뜻으로, 흔히 ‘무상無常(없을 무, 항상 상)하다’라고도 쓴다. ‘인생무상人生無常’ 할 때의 그 무상無常이다. 어느 것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이 없고 잠깐일 뿐인 인생을 생각하면, 문득 ‘부질없다’. 부질없는 것은 뜻이 없고, 찰나이며, 덧없다. 나와 나, 나와 너, 그리고 나와 하늘까지 서로 간에 한순간 고개를 돌리면 이쪽저쪽이 갈리고 모든 것이 부질없다.

‘부질’은 ‘불질’에서 온다. 대장간에서는 불질로 쇠를 달구어 여러 가지 용도의 사물을 제작한다. 그 불질은 풀무로 바람을 일으켜서 한다. 불질을 여러 번 반복해서 두들겨야 제대로 된 쇠붙이가 되는데, 그렇게 하지 못 하면 쇠가 물러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풀무가 없어도 불질을 못 하므로 아무 결과를 볼 수 없기는 매한가지이다. 그래서 ‘부질없다’는 헛수고이고 쓸데없는 공연한 행동이다. 부처님께 귀의하고 부처님을 예배한다는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彿’을 감히 빌려 말하면, ‘도로徒努(헛수고, 보람없이 애만 쓴-부처님을 찾았으나 허사가 되고만)’가 되었든, ‘도로都盧(온통, 전부, 모두-모두가 부처님)’가 되었든, ‘도로아미타불’이다.

사람은 ‘사이 간間’을 살아 인간人間, 세간世間, 시간時間, 공간空間을 살고, 긴 세월을 돌아본다 해도 결국 인생은 눈 깜짝할 사이여서 일순간一瞬間(깜짝일 순)이다. 간간間間이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착각과 자신을 속이는 어리석음 속에 살지만, 만사는 나의 뜻과 무관한 것이니 스스로는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고 방도가 없어서 하릴없다. 한낱 입김일 뿐(욥 7,7)이다. 그래도 대부분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인간이 순간을 넘어서 영원을 그릴 줄 알아서일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혼자서 부질없고 하릴없어 허무하고 공허하다고 몇 번을 되뇌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하늘을 쳐다보고 영원 속의 나를 기도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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