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명령 명命

‘목숨/명령 명命’은 일반적으로 ‘입 구口’와 ‘하여금 령/영令’의 합자合字로 보면서, 왕이 사자使者의 입으로 뜻을 전한다는 뜻으로, 곧 임금이 명령을 내려 백성을 부린다는 뜻으로 쓰인다고 풀이한다. 그나저나 결국은 도긴개긴이겠지만, ‘목숨/명령 명命’을 조금 더 자세히 뜯어 보면 ‘삼합 집亼’ 더하기 ‘입 구口’ 더하기 ‘병부 절卩(=㔾)’이다. 우선 ‘삼합 집亼’은 세 변이 합해져 완벽한 도형인 삼각형을 만들 듯이 어떤 세 가지가 어울려 조화를 이루면서 절대성 비슷한 것을 내포하는 상태이고, ‘입 구口’는 입이라는 구멍에서 나오는 말이나 누군가를 통해서 전달되는 내용이며, ‘병부 절卩(=㔾)’은 어떤 이가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그렇게 보면 ‘목숨/명령 명命’은 내가 무엇인가, 혹은 누군가의 뜻을 고분고분하게 목숨을 바쳐 대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거역할 수 없는 명령에 복종하여 답을 하는 것이므로 ‘목숨/명령 명命’은 ‘대답하다’, 명령에 부합하므로 ‘적합하다’, 절대권자의 뜻을 따라 상호 간의 뜻을 일치시키므로 뜻을 ‘모으다’  ‘합하다’의 의미로 나아간다.

‘명령’하면 우선 칸트Immanuel Kant(1724~1804년)를 통해서 ‘만약 행복해지려면…하라!’라는 소위 ‘가언명령假言命令’이 있고, 무조건적으로 반드시 해야만 한다는 ‘정언명령定言命令=단언적斷言的 명령=무상無上의 명’이 있다고 배웠다. 거창하게 다가오는 칸트의 ‘명령’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목숨/명령 명命’은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인생을 살다 보면 피하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마주치는 인연도 있고, 애써 피하다가도 우연이나 섭리처럼 다가와 같이 갈 수밖에 없는 인연도 있다. 하고 싶었으나 되지 않는 일이 있고, 하려고 하지 않았는데 저절로 그렇게 되는 일도 있다. 나는 생각지도 않고 무심히 지나친 말이었는데, 상대방에게는 인생을 바꾸는 상처가 되어 숙명이 되는 사연은 지나놓고 볼 때 너무 자주 있다. 때로는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고, 가기 싫어도 가야만 하며,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것이 중독인지, 나의 치유와 내가 살기 위한 발버둥인지, 상대방에 대한 의무와 희생인지, 서로의 사랑인지, 내 삶에 지워진 몫인지…. 어쩌면 이런 것을 아우르는 것이 ‘목숨/명령 명命’일 것이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내 인생에 주어진 명줄을 생명生命 혹은 수명壽命(목숨 수壽)이라 하고, 나도 너도 어쩔 수 없는 우리보다 강한 힘의 부름을 소명召命이라 하며, 벌罰처럼 사명使命처럼 수행해야 하는 명령을 천명天命이라 하고, 그 천명에 도리를 쫓아 순응하는 것을 순명順命(순할 순順)이라 하며, 얽히고설킨 인연의 실타래를 운명運命(돌, 옮길 운)이라 하고, 그를 담담히 받아들여 그에 머무는 것을 숙명宿命(묵을 숙宿)이라 한다.

성경에서 하느님은 인간에게 명령하시고 선포하시며 당신의 뜻을 끊임없이 요구하신다. 십계명으로부터 시작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나긴 방황, 그리고 마침내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7)에 이르기까지, 우리말의 신약성경에서만 ‘명령’을 검색해도 74절에나 보인다. 그런데도 성경에서 인간에게 가장 분명하게 명령이 아닌 위안으로 다가오는 명령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두려워하지 마라” 이다. 연약한 인간은 ‘명命’ 앞에서, 더구나 하느님의 ‘명命’ 앞에서 하염없이 두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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