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러울 난/란亂

‘어지러울 난/란亂’이라는 글자는 그 생김새 못지않게 풀이도 어지럽고 복잡하다. 차근차근 획순에 따라 글자를 분해하면 ‘손톱 조爪(움켜잡다) + 작을 요幺(실타래) + 덮을 멱冖(물레) + 또 우又(손) + 새 을乙(칼날)’라고 풀어서 ‘물레에 실타래가 위아래로 엉켜있는 것을 칼로 끊어내고 가지런히 정리해야 하는 것과 같은 상황’ 정도로 새겨볼 수가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어지러울 난/란亂’에 들어있는 우측의 ‘새 을乙’을 두고는 위에서 풀이한 것처럼 손으로 중간을 잡아 사용하는 위아래에 날이 있는 칼이라고 보기도 하고, 초목이 싹이 트려 할 때 웅크리고 있는 모양이라면서 그렇게 바르게 펴져야 하는 뜻을 담았다 하며, 어지러운 상태를 강조하기 위하여 굽은 선을 더 그어놓았다고도 한다. 대체로 ‘乚’을 ‘새 을乙’로 보는 것에는 일치하고, 이 글자를 제외한 왼쪽 부분이 엉켜있는 실타래를 양손으로 풀어내는 모양이라는 점에서도 의견들은 일치한다.

아무튼 ‘어지러울 난/란亂’은 복잡한 것이고, 어질러져 있는 것이며, 엉망진창(삼국지에서 유래된 진창陣倉에 있는 성城은 지금의 산시성 보계시에 위치)이고, 뒤죽박죽이며, 아수라장阿修羅場(불교 용어로 아수라阿修羅 왕이 제석천과 싸운 마당)이고, 무질서와 혼란이며, 나아가 조금 과장하면 난장亂場판(난장은 어지러운 과거시험장의 모습이거나 삼일장 오일장이 아닌 부정기적인 장터의 모습)이고, 개판(흔히 ‘개 견犬’을 써서 하는 개판이라는 말은 없다. 개판改板이라면 시름판에서 서로 이겼다 할 때 다시 판을 벌여 고쳐 바로잡는 것이고 개판開板이라면 피난민들을 위해 밥을 나눠주느라 밥뚜껑 여는 것)이며, 이어서 ‘흩어지다, 뒤섞이다, 어수선하다, 어지럽힌다’를 넘어서 이를 정리하고 다스린다는 뜻으로까지 나아간다. 중국이나 일본 사람들은 이 ‘어지러울 난/란亂’을 간단하게 ‘乱’이라고 쓰고, 중국 사람들은 아수라장이라 할 때 이를 ‘乱七八糟란칠팔조’라고 묘사한다 한다. 하필이면 ‘지게미 조糟’를 쓴 이유는 무엇인가 궁금해진다. 다 걸러서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내팽개쳐진 찌꺼기의 모습일까, 찌꺼기와 술과 발효된 쌀밥이 엉클어진 모양새일까, 술 먹고 취하면 일곱 여덟을 구별 못 할 정도로 엉망진창이 된다는 뜻일까?

‘어지러울 난/란亂’과 함께 쓰는 말들은 난국亂局, 난류亂流, 난리亂離, 난무亂舞, 반란反亂, 피난避亂(이는 전쟁, 쿠테타, 무법천지, 폭력배 난동 등 인간들의 무차별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상황을 피하고자 함이고, ‘어려울 난難’을 써서 피난避難이라고 할 때는 인간의 힘으로 일어난 일이 아닌 해일 등 천재지변을 피하고자 함이다), 동란動亂, 전란戰亂, 혼란混亂(섞을 혼), 내란內亂, 대란大亂, 요란擾亂(흔들릴 요), 소란騷亂(떠들 소), 심란心亂…하는 여러 말들이 있다.

똑같은 뜻으로 찾아지는 ‘어지러울 련/연䜌’은 잠시 눈감고 마음을 다스려 시간이 흐르면 날아갈 어지러움이고, ‘어지러울 란/난亂’은 비를 들고 청소하듯이 깨끗하게 쓸어내야 할 어지러움일까?

원래 세상은 일목요연하게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낱말들을 쓰고 있었다.” 그러다가 인간이 교만하여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워 (자기들의) 이름을 날리자!” 하는 바람에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생각하시고 그들을 보호하시느라 “온 땅의 말을 뒤섞어 놓으시고, 사람들을 온 땅으로 흩어 버리셨다.”라고 했다.(창세 11,1-9 참조) 이런 성경 말씀, 그리고 ‘용이무례즉란勇而無禮則亂(용맹하되 예가 없으면 어지럽고 – 논어, 태백泰伯)’이나 ‘교언난덕巧言亂德(교묘하게 꾸미는 말은 덕을 어지럽히고 – 논어, 위령공衛靈公)’ 하는 기원 전 공자님의 말씀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인간사의 뒤죽박죽과 현기증은 주제 파악에 아둔하고, 하늘과 도리를 모르는 인간의 교만과 예禮 없음에 그 뿌리를 두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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