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우雨

새들이 낮게 나는가 싶더니 움직임이 뚝 그치고, 주변이 조용해지며, 장난꾸러기 다람쥐들이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고, 멀리서 번개가 어렴풋이 번쩍이고, 손에 잡힐 듯 가까이 하늘 가득하던 하얀 구름이 슬슬 어두운 구름으로 덮여 어두워지며, 바람이 북쪽에서 불기 시작하다가 천둥이 잦아지며 소리가 가까워지면, 곧 비가 온다는 징조이다.

허리케인 시즌이 되어 며칠을 두고 1년에 내릴 비가 한꺼번에 오듯이 내릴 때 비로소 우기 시즌인지 알았던 것 같은데, 작년과 달리 금년에는 비가 잦다. 이것이 플로리다의 장마일까? 작년에 이러지는 않았으니 플로리다의 장마는 해거리를 하는 것일까? ‘장마’라는 단어가 한자 말인 줄 알고 찾았다가 16세기부터 ‘댱마’라고 쓰던 우리 말에서 기원하였다는 것을 알고 머쓱해진 적이 있다.

‘비 우雨’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들의 모습을 그렸다. 이 글자를 부분으로 삼아서 만들어진 또 다른 글자들은 300개가 넘는다 하니, 가히 하늘을 보고 살아야 하는 땅 사람들의 삶과는 뗄 수 없는 글자이고, 때와 철에 따라서, 해야만 하는 일상과 연관되어 있다. 구름 운雲, 구름무늬 문雯, 눈 설雪, 번개 전電, 우레 뇌/뢰雷, 벼락 벽霹, 벼락 진震, 우박 박雹, 서리 상霜, 안개 무霧, 이슬 로露, 진눈깨비 영雵 같은 몇 개의 글자만을 보아도 글자들이 다양하고 그 안에 각각의 사연이 담겼다. ‘비 우雨’라는 글자와 함께 만들어진 비의 종류만 헤아려도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장마’ 때처럼 많이 내리는 비만 헤아려보더라도 매실이 누렇게 익을 무렵에 내리는 비라서 梅雨(매화나무 매), 오랫동안 내리는 비라서 久雨(오랠 구), 숲처럼 쏟아지는 비라서 霖雨(장마 림/임), 연이어 내리는 비라서 連雨(잇닿을 련/연), 온 뒤에 또 내리는 비라서 積雨(쌓일 적), 장마가 져 물의 수위가 높게 불어나게 하는 비라서 滈雨(장마 호), 호탕하게 내리퍼붓는 비라서 豪雨(호걸 호), 비의 강도나 수준이 비교 대상을 훨씬 넘는 비라서 凌雨(업신여길 능/릉), 무섭고 사납게 내리는 비라서 暴雨(사나울 폭) 등 다양한 말들이 있다.

이런 비들이 내리면 밖에 나갈 수 없어 방에 앉아 한참 창밖을 내다본다. 그러면 우산 파는 아들과 짚신 파는 두 아들을 두어 비가 오든 오지 않든 시름이 깊어간다는 어머니의 이야기가 떠오르고, 천하의 불효 자식이 뒤늦게 뉘우쳐 어머니의 마지막 말씀이라도 지켜볼 양으로 물가에 어머니를 묻고 떠내려갈지도 모르는 어머니 때문에 비가 올 때마다 울어댄다던 청개구리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살랑거리는 아지랑이와 봄비가 얽혀 봄 강(春江)을 짠다 했지만, 여름철에 내리꽂는 장대비와 숨 가뿐 땅의 입김이 얽혀서는 왠지 모를 추억과 한숨이라는 삼베옷을 짓는다. 그래도 플로리다의 거칠고 야성적인 비는 금방이다. 언제이냐 싶게 맑은 하늘을 돌려주면서 후끈한 열기로 지겹던 비를 다시 그리워하게 한다. 보기 힘들다는 쌍무지개도 많고 여우가 시집가고 호랑이가 장가가는 날도 많다. 비는 여러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사람들은 눈 올 때 해 뜨는 것은 헤아리지 않으면서도, 비 올 때 해 뜨는 것을 두고는 이야기를 지었나 보다. 그렇게 해가 뜨면 하얀 구름은 하늘에 형형색색의 놀이를 다시 시작한다. 그렇게 금방 하늘 구름은 잡힐 듯 눈앞에 있는데, 푸른 풀밭은 멀리 끝 간 데가 없다. 그렇게 구름, 하늘, 해, 풀밭, 비와 함께 뜨거움이 지나간다.

성경에서 가장 오랜 비요 끔찍하고 무서운 비는 사십일을 두고 밤낮으로 내려 하느님 손수 지으신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려고 내린 비, “심연의 모든 샘구멍이 터지고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내린 비, “물이 불어나, 온 하늘 아래 높은 산들을 모두 뒤덮은” 비, 그래서 “마른 땅 위에 살면서 코에 숨이 붙어 있는 것들이 모두 죽은”(참조. 창세 7장) 비이며 파라오의 못된 심보로 “우레와 우박”과 함께 내린 비이지만, 모세가 주님께 “손을 펼치자 더 이상 쏟아지지 않은 비”이며(참조. 탈출 9,13-35), 엘리야 예언자가 카르멜 산에서 참 하느님을 섬기지 않던 바알 예언자들을 혼내주던 비(참조. 1열왕 18장)이고, 삼년 육 개월 동안 내리지 않게 했던(참조. 야고 5,17) 비이다. 이래저래 성경의 비는 인간의 못된 행실에 대한 하느님의 벌이고 하느님의 권능이지만, 주님께 돌아설 때 멈추는 재앙이고 오히려 복이다. 하느님께서 “비가 내리도록 번개를 만드시고 당신의 곳간에서 바람을 꺼내시지만”(예레 10,13;51,16), 제 때에 내려주시는 비는 복이 된다.(참조. 에제 3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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