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해 년年

나는 먹은 기억이 별로 없는데 먹었다 하고, 해는 절로 가며, 나이는 스스로 든다. 아무리 동안童顔이라고 자위를 해도 나이와 해의 자발적自發的인 작동은 야금야금 어느새 내 안에 자리를 잡고 문득 친구들의 사진이라도 흘낏 볼라치면 결국 내가 저 모양새일 것이라는 생각에 섬뜩해진다.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매일 보는 자기 얼굴은 볼 줄 모르고 다른 이들의 얼굴을 보고서야 자신의 얼굴이 지닌 참모습을 가늠하는 속성을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나를 속일 수는 있어도 나이는 눈치 빠르고 영리해서 속일 수가 없다. 내세울 것이 없어서 나이 덕이나 입자고 해도 그것은 추레하다. 먹는 것도, 드는 것도, 하나둘 세는 것도 아닐 테지만, 과연 나이는 먹는 것인가, 드는 것인가, 세는 것인가?

年은 사람(人·인)이 볏단(禾·화)을 지고 가는 모습으로 수확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해 년마다 수확하는 곡식의 주기를 생각해서 365일 한 바퀴를 도는 한 해, 두 해 할 때의 ‘해’라는 뜻이 더해졌다. ‘년年’이라는 글자에 담겨있다는 ‘벼 화禾’는 ‘사람 인人’과 ‘천千’으로 짜여 있는데, 이 글자의 원래 모습은 곡물의 이삭이 늘어진 모양에서 왔다. 이때의 ‘천千’은 ‘많다’는 내용이다. ‘천千’을 두고는 ‘일천 천’이라 하기도 하고 ‘밭두둑 천’이라고도 한다. 이래저래 한 해를 돌면 또 한 번의 가득한 곡식의 수확을 얻는다는 뜻이 담겨있는 ‘나이, 해 년年이라는 글자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시간의 경과 속에서 별로 거두는 것이 없는 인간에게는 내심 썩 부담스러운 자격지심을 유발하는 글자임이 틀림없다.

‘연/년’이라는 글자를 넣어 만들어진 단어들은 무엇이 있을까 싶지만, 일상에서 곧잘 쓰는 연간年刊(책 펴낼 간) 연금年金 연내年內 연대年代(대신할 대) 연도年度(법도 도) 연두사年頭辭(말씀 사) 신년사新年辭 연례年例(법식 례) 연령年齡(나이 령) 연륜年輪(바퀴 륜) 연리年利(이로울 리) 연보年譜(계보 보) 연봉年俸(녹 봉) 연상年上(윗 상) 연세年歲(해 세) 연대기年代記(기록할 기) 연령층年齡層(층 층) 연하장年賀狀(하례 하, 형상 장) 등등 무수히 많다.

성경이 말하는 ‘나이, 해 년年’은 한결같이 하느님의 앞에 선 인간의 보잘것없는 지혜, 죄와 허물, 기품 등과 관련이 있다. 갖은 고생을 치른 욥을 변호하는 이는 “저는 ‘나이가 말을 하고 연륜이 지혜를 가르쳐야지.’ 생각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사람 안에 있는 영이, 전능하신 분의 입김이 사람을 깨우치는 것이더군요. 연만하다고 지혜로운 게 아니요 연로하다고 올바른 것을 깨닫는 게 아니랍니다.”(욥 32,7-9)라면서 욥을 두둔하고, 지혜로운 왕 솔로몬이 썼다고 알려지기도 하는 지혜서의 저자는 “영예로운 나이는 장수로 결정되지 않고 살아온 햇수로 셈해지지 않는다.”(지혜서 4,8) 하며, 악한 이를 벌하는 소년 다니엘 예언자는 “악한 세월 속에 나이만 먹은 당신, 이제 지난날에 저지른 당신의 죄들이 드러났소.”(다니 13,52) 한다. 예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아 눈을 뜬 소경의 부모는 못된 바리사이들에게 “나이를 먹었으니 제 일은 스스로 이야기할 것입니다.”(요한 9,21) 하고, 바오로 사도는 “나이 많은 남자들은 절제할 줄 알고 기품이 있고 신중하며, 건실한 믿음과 사랑과 인내를 지녀야 합니다.”(티토 2,2) 한다.

나이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거둘만한 것이 있어야 먹었다 하고, 들었다 한다. 그래서 신체적인 나이는 먹었으되 정신 연령이 낮거나 주책스럽고, 아직은 싱싱하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을 두고는 ‘나이가 아깝다’ 하고, ‘나잇값을 못 한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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