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와蛙

늘 더운 여름이지만 요 며칠 비가 내린다. 무덥지만 그래도 견딜만하게 선선해진 저녁나절, 적어도 강한 햇빛은 없는 시간으로 한낮의 걷는 시간을 바꾸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개구리가 없어진 지 오래된 듯 잊어버리고 살았던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었다. 해묵은 논쟁도 떠올랐다. 피부로도 호흡하는 양서류의 특성상 촉촉이 젖어 있어야 할 개구리의 피부가 농약 같은 화학물질에 노출되면서 개구리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고 개탄하는 생태론자들의 걱정과 생태만 얘기하다 죄다 굶어 죽는다며 인간의 생존권을 거론하는 개발론자들의 논란에 단골로 등장하는 주인공 도롱뇽과 개구리가 생각났다.

‘개구리 와蛙’라는 글자에 관해 『‘벌레 충虫’이 의미부이고 ‘홀 규圭’가 소리부로, 양서류 동물인 개구리를 말하는데, 임신한 것처럼 불룩한 배 때문에 ‘음란하다’, ‘외설스럽다’ 등의 뜻도 나왔다. 달리 虫 대신에 ‘맹꽁이 맹黽’을 쓴 ‘개구리 와䵷’로 쓰기도 한다.(하영삼, 한자 어원사전, 571쪽)』 라고 사전은 설명하지만, 임신이나 불룩한 배가 음란이나 외설의 표상은 아닐 것이고 간단한 설명이라 설명이 썩 개운치가 않다.

동심童心의 개구리헤엄(와영蛙泳)을 맨 먼저 떠올리게 하는 개구리는 ‘표본실의 청개구리’처럼 동물 해부 실험의 주된 대상이고, 뒷다리 튀김으로 인간의 간식거리이거나 다른 포식자의 먹이이며, ‘솥 안의 개구리The Frog In the Kettle’라는 영어 표현대로라면 찬 물에서 시작해서 점점 뜨거운 물이 되어갈 때 상황을 의식하지 못하고 죽어가는 멍청이이고, 사람들이 서투르거나 괜스레 떠들썩한 것을 여름날 개구리의 울음과 매미의 요란한 울부짖음에 빗대어 ‘와명선조蛙鳴蟬噪蛙(개구리 와, 울 명, 매미 선, 떠들썩할 조)’라고 조롱하고 개구리 울음소리를 ‘와명蛙鳴’이니 ‘와성蛙聲’이라 할 때 그저 소음이나 발생시키는 생물이며, ‘정저지와井底之蛙’, 곧 우물 안 개구리라 하면 개구리는 제가 보는 것만 보는 어리석음의 대명사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정저지와井底之蛙’ 할 때 말 그대로 풀면 底라는 글자가 밑이고 바닥을 뜻하는 것이니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라 ‘우물 밑 개구리’인데 왜 ‘우물 안 개구리’라고 했을까 하는 쓸데없는 의문이 든다. 뭍이나 물을 양쪽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사는 양서류兩棲類인 개구리가 우물 안의 밑바닥에서 올려다본 하늘을 상상하고 만들어진 말이었을까? 겉과 속이 다르고 안과 밖이 다르며 쉽게 말해 이쪽저쪽을 경계지어 넘나들 수 있는 공간의 개념이 ‘안’이고, 일정한 내부의 공간이나 내면을 ‘속’이라 한다면 개구리는 분명 ‘우물 속 개구리’가 아니라 ‘우물 안 개구리’다.

개구리는 이규보李奎報(1168∼1241년) 선생으로부터 유래되어 오늘날까지도 뇌물이나 부정한 청탁을 위한 상납을 빗댄 ‘와이로’의 근원이 되었다는 『蛙利鷺 唯我無蛙 人生之恨(와이로 유아무와 인생지한)-백로에게 이로운 개구리, 나에게만 없으니 인생의 한』이라는 구절에서 한낱 뇌물로 바쳐진 희생양이다. 꾀꼬리와 까마귀의 노래 시합에서 심판을 맡았던 백로에게 노래 연습도 하지 않은 까마귀가 백로가 좋아하는 개구리를 잡아다 바쳐 꾀꼬리를 이겼다는 이야기이다. 출중한 실력에도 남들처럼 뇌물을 바치지 못해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이규보 선생의 신세 한탄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모두 압도하는 개구리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면서 울어댄다는 비 오는 날의 갸륵한(?) 청개구리이다. 그리움과 슬픔을 알아가는 것이 나이로 되는 것이 아니고, 사람마다 처지에 따라 기구한 사연도 있게 마련이지만, 그 청개구리가 삼 사십 대의 젊은 청개구리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굳이 따라붙는 것은 설령 그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고 겉으로는 눈물을 줄줄 흘릴지라도 속으로는 아직 자기의 그릇됨과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을 진정으로 깨우쳐 슬피 울지 못할 것으로 가늠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환갑이 넘고 칠순이 넘어 자기 죽음이 서서히 다가올 무렵에나 비로소 생명의 근원인 어머니를 생각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울 수 있는 것이 인생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2 thoughts on “개구리 와蛙”

  1. 대학에서 이규보 선생님 공부를 해서 그러나 벤지 작가님의 글이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늘 한문을 어렵습니다. 이규보 선생님의 글을 이해하기가 한문때문에 더 어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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