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길 반搬

‘이사를 가다/하다’라는 것을 한자말로 표기하면 ‘옮길 반搬’이라는 글자를 써서 ‘반가搬家’라고 한다니 말 그대로 집을 바꾸는 것이고 옮기는 것이다.

이때 사용하는 ‘옮길 반搬’은 손을 뜻하는 재방변(扌=手)과 소릿값인 ‘돌, 옮길 반般’이 합하여 손으로 옮기는 행위를 나타낸다. ‘반般’이라는 글자는 배를 뜻하는 ‘배 주舟’와 나무 막대기를 뜻하는 ‘막대기 수殳’가 합해져 있고, 또한 배가 돌아다니거나 나르고 옮긴다는 뜻도 있으므로 옛날 사람들이 노를 젓는 배로 이사를 해서 그런 글자가 생겼나 하고 상상해 본다. ‘반般’을 실제 ‘손으로 잡고 배를 돌린다’는 뜻으로 풀기도 한다.(하영삼) 그런데 ‘반般’이라는 글자를 두고 한참 거슬러 올라가 갑골문에서는 이 글자를 이루는 ‘주舟’가 밥그릇이고 ‘수殳’는 손에 든 숟가락이라 한다고 한다. ‘그릇 명皿’을 붙여서 ‘쟁반’이나 ‘받침’이라는 뜻을 지닌 ‘소반 반盤’이 ‘반般’이라는 글자의 전신이었고, 밥 먹는 일과 같은 일상적인 것을 가리킬 때 ‘일반一般’이라 한다는 것을 보면 ‘반般’은 밥그릇이나 숟가락과 분명 깊은 관련이 있기도 할 것이다. 한편에서는 ‘소반 반盤’을 배처럼 바닥이 평평한 그릇이라 하기도 한다. ‘옮길 반搬’에는 이래저래 손, 배, 밥그릇과 숟가락 등이 엉클어져 있다.

불가의 스님들은 이동 시에 발우鉢盂(바리때 발, 사발 우)가 필수품이었다고 하지만, 적어도 오늘날 가톨릭의 수도자만큼은 이동할 때 밥그릇이나 숟가락을 가지고 다니지는 않을 것이고, 소임 따라 옮겨간 집에 있는 밥그릇과 숟가락으로 다른 밥을 먹는 과정이 되므로, 그들의 이사는 단순하게 말해서 밥그릇과 숟가락 바꾸기 정도일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32개월이 채 못 되는 플로리다의 생활에서 뉴욕으로 배가 아닌 비행기를 타고 이주해왔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여름 나라에서 갑자기 영하의 나라로 왔다. 어린 시절부터 수도원에 살았고, 수도 없이 이 집 저 집을 옮겨 다녔지만, 아직도 가장 싫은 일 중의 하나는 보따리 싸는 일이다. 몇 날 며칠을 한숨 쉬며 바라만 보다가 날짜가 목에 차서 이민 가방 한 개와 라면 상자 크기의 상자를 몇 개 구해서 꾸겨 넣었다. 주로 여름옷뿐이었으므로 이민 가방 하나에 옷은 모두 넣고도 공간이 남았다. 문제는 상자였다. 남은 소지품은 책 몇 권과 잡동사니까지 두 개의 박스면 충분했다. 우선 한 개에 책들을 모두 넣고 꼼꼼하게 테이프로 포장을 했지만, 그것을 들어 옮기려다 보니 허리를 상할 것 같았고, 배달하시는 분에게까지 큰 누가 될 것이라는 염려가 생겼다. 어쩔 수 없이 상자를 다시 풀어헤쳐서 다섯 개의 상자에 분배하여 넣고, 문방구에서 파는 packing nuts로 빈 곳을 메꾸고 포장하여 우체국에서 발송하는 것으로 이사는 끝났다.

휑한 침실에서 마지막 잠을 자려다 문득 열여섯 소년 시절 포근한 가을 어느 일요일 오후, 양쪽에 책이나 도시락을 넣고 가운데는 잡동사니를 넣었던 책가방 하나와 큰 보자기에 이불 하나를 싸서 수도원으로 가던 날을 생각했다. 다른 소임지로 이동할 무렵이면 항상 떠오르는 집을 떠나던 내 인생 첫 이사의 기억이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 이삿짐을 꾸리던 날로부터 팔십 줄에 앉은 아브라함이 길을 떠나던 날,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이 약속의 땅에 이르기까지 자고 일어나면 다시 짐을 꾸려야 했던 몇십 년의 날들, “주님께서는 그들이 밤낮으로 행진할 수 있도록 그들 앞에 서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 속에서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 속에서 그들을 비추어 주셨다.”(탈출 13,21-22) 하던 날들…평생 이동과 이주를 매듭과 계기로 삼으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일 것이기도 하지만, 이번 이사 후에 나는 몇 번이나 짐 보따리를 또 싸야만 하는 것일까?

3 thoughts on “옮길 반搬”

  1. 이사할 때마다 “우린 가진 게 넘 많구나” 반성을 합니다.
    그럼에도 어쩐지 살아있는 동안 필요할 것 같아서 버릴 수도 없고,
    버리고 가면 다시 구비해야 하는 생활필수품??!!들입니다.
    다행히 마지막 이사에는 발우조차 챙길 필요없고 짐을 꾸릴 필요도 없이
    주님 손만 잡고 가면 되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날씨가 많이 춥습니다. 감기 안걸리게 조심하시고 건강하시길 ~
    새 임지, 새로운 소명! 주님의 축복을 빕니다. _()_

  2. 신부님 잘 도착하셔서 건강하게 잘 지내시길 기도드립니다.
    계시는 동안 너무 감사하고 많은 배움 얻었습니다.

  3. 2003년에 미국 땅 첨 밟아서, 지금까지 몇번의 이사를 했나 눈감고 조용히 머릿속에서 끄덕거려 봤습니다. 열다섯번…ㅎㅎㅎ 제가 신부님께 감히 자랑(?)할 수 있는건, 미국에서의 이사횟수인 듯 합니다. ㅎㅎㅎ

    매번 이사를 할때 마다, 짐을 줄여야해 혹은 이런건 도대체 왜 샀던걸까 쓰지도 않을거면서란 불평을 중얼거리며 짐을싸곤 합니다. 그리고는 당장 필요없어보이고 쓰지 않는 물건들을 과감히(?)버리거나 지인들에게 선심쓰듯 나눠주곤 합니다.

    그렇게 홀가분하게 이삿짐을 싸고 정든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 와서 짐을 풀고, 정리를 하고나면, 언제나 저에게는 불청객이 찾아오곤 합니다.

    ‘아…그걸 왜 버렸지…아..그걸 왜 그냥 주고 왔지… 지금 필요한데…’ ㅎㅎㅎ

    비단 물건만 그런것이 아니겠지요. 이사를 한다는것은 익숙한 장소, 혹은 미운정 고운정들은 사람들을 정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지만, 때론 그것이 정리를 넘어 단절을 불러오기도 하는 듯 합니다. 인연이라는 그럴싸한 말로 포장을 하기도 하지만, 늘 그렇듯 포장지는 갈기갈기 찢겨 버려지고 말죠.

    새로운 곳에서, 많은 좋으신 분들과 행복한 생활하시길, 그리고 건강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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