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풍風

‘바람 풍風’은 원래 ‘봉새 봉鳳’과 같이 쓰여서 ‘무릇 범凡’과 ‘벌레 충‧훼虫’, 혹은 ‘새 조鳥’의 합자로 본다. 돛단배의 돛을 그린 ‘범凡’은 바람 없이 갈 수 없는 바람 그 자체이고, 옛 중국에서는 곤충이나 새가 모두 ‘벌레 충‧훼虫’에 속할 수 있었으므로 그렇게 썼을 것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바람이 불면 벌레가 생긴다는 생각(풍동충생風動蟲生)으로 ‘벌레 충‧훼虫’이 더해졌다고 하기도 하고, ‘새 조鳥’를 썼던 것은 봉새의 날갯짓으로 바람이 생긴다고 생각하여 그랬을 것이라 한다.

여덟 방위를 갈랐듯이 바람은 사방팔방에서 분다. 그렇게 부는 바람은 풍전등화風前燈火나 풍비박산風飛雹散처럼 형상이고, 미풍양속美風良俗이나 풍기문란風紀紊亂, 위풍당당威風堂堂처럼 풍습이나 풍속을 넘어 풍모나 풍채이며, 풍문風聞이나 풍설風說처럼 먼 곳에서 날아와 작은 틈새라도 어김없이 파고드는 속성이고, 풍경風景, 풍물風物, 풍광風光처럼 멋진 것이다. 바람은 농경사회에서 작풍作風을 관장하는 신이어서 ‘태풍 태颱’가 되면 크게(台·대, 臺의 속자) 부는 강한 바람이고, ‘폭풍 표飆’가 되면 사나운 개 여럿이 달려들 듯(猋·개 달리는 모양 표) 휘몰아치는 폭풍이며, ‘회오리 바람 표飄’가 되면 불꽃이 튀어 가볍게 솟아오르듯(票·표) 하늘로 솟아오르는 ‘회오리바람’이다.

비가시적인 실체인 바람은 사람들이 보고 싶고 손에 잡아보고 싶은 꿈이고, 새들이 높은 곳에서 활공滑空할 때 모든 것을 벗어나 유유자적하는 놀이이며, 연鳶(솔개 연)이 될 때 너와 나를 넘어 가면이고 하늘에 그리는 그림이자 환상이다. 바람은 나는 것들로 자신을 드러낸다. 바람은 아무도 볼 수 없지만, 누구나 볼 수 있게 자신만만하여 초당 몇 미터를 가는지로 자신의 힘과 방향을 과시하고, 골짜기에서 꼭대기를 향하여 가다가 꼭대기에서 골짜기로, 물에서 뭍으로 가다가 뭍에서 물로 가면서 종횡무진縱橫無盡이다. 새·곤충·꽃가루·종자 ·구름을 날리면서 바람은 제 할 일을 하는 우주의 숨과 기운이다. 바람은 모든 것을 씻은 듯이 날려버리는 찰나요 허무와 불안이어서 저돌적이고 폭력적이기도 하지만, 풍요의 숨결이고 성스러운 정신이며 인간이 노래로 듣고 싶어 하는 가락이다.

밤새 어디서 어떻게 부는지도 모르게 큰소리를 치며 두려울 만큼 바람이 강하고 무섭게 불었다. 숲에는 나뭇가지들이 수북이 떨어져 내렸고, 다람쥐와 사슴들은 일제히 숨었다. 두 마리의 새들만이 높이 난다. 도토리들이 지천이라 다람쥐가 겨울 대비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따뜻하다더니 기온도 큰 폭으로 떨어지고 급기야 저녁나절에는 백 퍼센트의 확률로 눈이 내린다고 한다.

주님께서 엘리야와 만나실 때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할퀴고 주님 앞에 있는 바위를 부수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바람 가운데에 계시지 않았다. 바람이 지나간 뒤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지진 가운데에도 계시지 않았다. 지진이 지나간 뒤에 불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불 속에도 계시지 않았다. 불이 지나간 뒤에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1열왕 19,11-12)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코데모에게 예수님은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요한 3,7-8) 하신다. 조용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불 때, 너와 나 사이에 하늘 바람이 불면, 우리는 날고 영에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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