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 뜰 격隔

‘사이 뜰 격隔’은 왼쪽에 붙어서 언덕이라는 뜻을 지닌 ‘언덕 부阝=阜’와 소릿값인 ‘막을 격鬲’이 합쳐진 글자이다. 너와 나 사이를 가로막는 언덕이나 장벽으로 갈라지고 나뉘어 가로막힌 상황이다. 그런데 ‘막을 격鬲’ 역시 항아리 같은 것을 올려놓고 밑에서 불을 지필 수 있는 공간이 있는 상황을 묘사한 글자이니 이로 미루어 ‘사이 뜰 격隔’은 언덕과 언덕, 혹은 큰 언덕인 산과 산 사이의 공간이고 떨어져 있음이며 막힘이고, 경계를 넘어 멀리하다 보니 서로가 달리 바뀌어 가는 상황이다. ‘사이 뜰 격隔’에는 ‘칠, 부딪칠 격擊’이라는 뜻도 담겼다.

‘칠, 부딪칠 격擊’은 ‘손 수手’라는 하단부 위에 ‘수레 끌 수軗’라는 글자가 올라앉아 있다. ‘수레 끌 수軗’는 ‘수레 차車’와 ‘창 수殳’의 결합이니 수레 위에서 손에 창을 들고 상대방을 공격하고 친다는 뜻이다. 결국 ‘칠, 부딪칠 격擊’은 수레바퀴 같은 것이 돌면서 무엇인가에 부딪혀 큰 소리를 내는 상황이나 손으로 무엇을 가격하는 것을 넘어 수레 위에서 누군가를 공격하는 모양새다.

COVID-19라는 바이러스가 인간을 공격해왔고 급기야 하늘, 땅, 사람들 사이가 떨어졌으며(隔), 전자현미경으로나 보아야 보이는 작은 바이러스들이 온 세상을 내려친다(擊). 격리隔離(lockdown, isolation)요 격추擊墜(shutdown)이다. 누구나 난생처음 맞아보는 이변이다. 수많은 사람이 이별의 인사마저도 못한 채 서로 생을 달리해야만 했고, 아픈 이들을 돌보는 이들은 사투死鬪를 벌여야 하며, 서로는 두려움의 시선으로 살피고 움츠린다. 경험의 축적으로 살아가는 인간 사회는 사례가 없고 유례가 없어 당황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일상과 서로의 소중함을 발견하기 시작하고, 손으로는 닿지 못해도 마음으로 닿아야 하는 것들과 만지지는 못해도 보이지 않는 것들의 가치를 새기며, 숨 가쁘게 급하기만 했던 우리의 지난날을 돌아보고, 우리가 그렇게 위대하다고 자부했었으나 그렇게도 작은 것 앞에서 속수무책일 만큼 연약함을 절감하며, 절대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던 황갈색 이산화탄소로 뒤덮인 하늘이 푸른 빛을 되찾았다는 사실을 목격한다.(황색빛 하늘도 죽인 코로나···중국 대기가 파랗게 변했다-중앙일보, 2020.03.01. 참조)

하늘의 경고이자 숨 고르기이고, 땅의 쉼이며, 사람들이 기도하는 시간이다. 새들은 여전히 다시 울고, 꽃들은 다시 피기 시작하며, 봄이 다시 오고 있다. 낙엽이 수북한 숲속에 제멋에 살다가 요정의 구애를 아랑곳하지 않았던 수선화 몇 송이가 피었다.

“마리안 쉬라인(오늘 오후)”

4 thoughts on “사이 뜰 격隔”

  1.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폐렴 바이러스가 전 세계의 인류를 공격(攻擊)하자, 모두가 하나이던 글로벌 지구안의 모두가 각각 격리(隔離)를 하는 것 외에는 현재로선 답이 없다는 사실이 참
    우리를 당황스럽고도 약하게 만드네요.
    대지에서 올라오는 꽃 한송이처럼 조만간에 우리 모두 편안한 숨을 쉬며, 함께 미사드리는 날 오리라 믿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1. 신부님의 격리와 격추의 한자설명으로 글자안에서 지금 사태를 느낄수 있을것 같습니다.
      첨엔 당황스럽다가.. 곧 이런 시기를 주시는 것도.. 짧은 소견에도 다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간의 인간들의 잘못들, 저의 잘못들…. 하느님께선 그것들을 보시고 앞으로의 더 나쁠 상황에 대해 미리 준비하게 ‘경고’하시는것 같습니다.
      신부님께서 ‘사람들이 기도하는 시간’이라고 하심에 동감하게 되고, 이런 가운데에도 예쁘게 피어난 수선화를 보며 곧 함께 미사드릴수 있는 시간을 기대하며 설레입니다🌸

  2. 김건중 벤자민 신부님, 축일 축하합니다.
    미국에서 중요한 사목을 시작하시는 이 시기
    몸 건강히 지내시길 기도합니다.

  3. 아득하고 먼 그리움이 묻어나는 글 같습니다. 곱게 핀 수선화 바람과 햇빛으로 물들어 웃고있는 꽃의 모습 찬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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