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낼 분憤‧忿

‘분노’라는 말을 한자어로 찾으면 ‘성낼 분憤’을 써서 ‘분노憤怒’라고 하거나 같은 뜻을 가진 ‘분忿’이라는 글자를 써서 ‘분노忿怒’라고 쓴다. ‘분憤’이나 ‘분忿’은 전혀 다른 글자이지만, 뜻이 같으므로 서로 통용이 되는 ‘통자通字’이다. 우리말 사전에서도 ‘분노’를 검색하면 憤怒·忿怒라는 한자어를 나란히 기록해준다. ‘분노’는 속에서 화증火症이 치밀어오르는 것이고, 심하면 머리끝까지 끓어오르므로 비틀려 질질 나오듯 어느 순간 자아낼 수밖에 없고, 참다못해 버럭 성을 내며, 숨을 씩씩거리고 삭인다.

‘성낼 분憤’이라는 글자는 ‘마음 심心’자와 ‘클 분賁’이라는 글자가 결합하여 마음에 응어리진 것이 크게 분출하는 상황인데, ‘賁’이라는 글자는 커다란 북을 형상화하였다고 알려진다. 예전에 전쟁을 치르기 전에 북소리를 울려 병사들의 사기士氣를 극도로 끓어오르게 하는 상황을 뜻하는 ‘賁’자에 ‘心’자를 결합한 것이다. 그렇게 보면 ‘마음 심心=忄, 㣺’과 소릿값인 ‘분分’을 합하여 만들어진 ‘성낼 분忿’은 그려진 모습이 훨씬 단순하다.

‘성낼 분憤‧忿’ 두 글자는 모두 ‘마음 심心’을 바탕으로 생겨난 글자이니 ‘분노’는 분명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누군가로부터 나 자신이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거나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오해받는다고 생각할 때, 그리고 누군가가 내 말이나 행동‧태도를 부분적으로 잘라서 이용한다고 생각하면 속상하다. 하지만, 삐져서 속앓이하다 간혹 앙심이 되는 것들,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마음에 품다가, 말로 표현하다가, 가혹한 비난과 비판의 행동으로까지 3단계로 표출된다.』 했던 ‘욱’하거나 ‘버럭’으로 터져 나오는 속상함도 세월이 가면서 무디어지다 못해 보이지 않게 미미해지고, 그것마저 횟수나 발생 주기가 뜸해지고 무디어지는 것을 보면, 그리고 나의 의사를 기껏해야 30% 정도나 묘사하고 살아야 하는 외국 생활에서는 체념 쪽으로 기우는 듯하기도 하다. 어느새 나와 나 자신의 의견이나 태도를 분리하는 법을 익힌 것이거나 처세나 요령이 늘었기 때문일까?

현대 사회는 우발적 범죄가 횡행하고 ‘분노 사회’가 된 지 오래며, ‘분노조절장애’라는 말이 흔한 말이 되면서 사람들은 그런 말 뒤에 숨어 분노를 처리한다. 분노의 다른 이름들인 화, 격분, 흥분, 충돌, 노여움, 울분, 분개, 분통, 짜증, 부아는 흔히 큰 소리나 불평불만, 욕설, 폭행이 되어서 타인을 파괴하기 위한 무질서로 표출될 때 주로 내가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대상에게로 향한다. 그러지 않을 때는 뒤에서 수동적 공격성인 은근한 어깃장이나 냉소가 되거나, 자학으로 자신을 못살게 굴기도 하면서 마침내 나를 해치고 타인을 해치는 죄가 된다. 그리고 내가 알든 모르든 큰 수치심을 동반한다.

분노는 가끔 음욕과 결합하든지 먹고 마시는 것과 결합하여 대체물을 통한 병적인 증상으로 나타나든지, 미적거림으로 변신해서 최선이 아닌 차선에 안주하게도 하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안에 오래 내재하여 만성적 분노로 자리 잡을 때가 있다. 누구나 분노가 없을 수는 없어서 살아 있는 것의 분출이라고도 하지만, 개인의 분노는 결국 폭력 사회를 조장한다. 물론 분노는 그 누구도 이뤄내지 못하는 예술의 경지를 이뤄내는 창조적 에너지와 자기방어를 위한 힘이 되어 생존의 동력이 되기도 하고, 공분公憤은 사회운동이 되어서 사회를 바꾸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현대 사회에서 분노는 아예 병이 되고 장애가 된다. 『사소한 것에 목숨 걸 정도로 예기치 않게 파괴적 행위나 짜증으로 터져 나오는 간헐적 폭발 장애인 분노조절 장애가 있고, 누군가에게 당한 충격과 억울함이 굳어져 지속적 분노가 되고 예민해지거나 반대로 무관심해져서 일종의 불안 장애가 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도 있으며,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처럼 변덕스럽고 극단적이며 충동적인 경계성 인격 장애, 사이코패스가 되어 타인을 해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반 사회성 인격 장애로 나타난다. 심지어 신경계통을 손상하여 우울한 기분과 불면증, 식욕부진, 불안과 비관, 짜증, 감정기복 등의 증상을 계속 동반하면서 약을 먹게도 한다.(참조. 김인호, 그리스도인의 분노 다스리기, 경향잡지, 2018년 7월호, 17-19쪽)』

번지樊遲라는 제자가 공자님께 덕을 높이고 나쁜 마음을 닦아내며 미혹을 분별하고자 하면 어찌해야겠느냐고 여쭌다. 공자님께서는 물음 자체가 좋다 하시며 일은 먼저하고 대가는 뒤로하는 것이 덕을 높이는 것이고, 자신의 나쁜 점은 다스리고 타인의 나쁜 점은 공격하지 않는 것이 사특함을 다스리는 것이며, 한때의 분노로 자신을 잊고 부모에게까지 화가 미치도록 하는 것이 미혹됨이 아니겠는가 하셨다.(논어論語, 안연편顏淵編, 21)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식자들은 분노의 뿌리가 나를 지키려는 이기利己에 닿아있어서 어느 순간 타인을 향하여 뻗칠 때 한순간으로 모든 것을 망치게 되고 심지어 가까운 이들까지 피해를 보게 하니 자제와 인내라는 훈련으로, 그리고 이성으로 통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분노를 다스린다 하고, ‘식분熄忿(꺼질 식)’이라 하며, 『타오르는 불과 같으니, 참음으로써 꺼야 한다고 하고, 참으면 없어지고 고요하면 물러난다(忍則去, 靜則却) 한다.(빤또하, 칠극七克, 일조각, 1998년, 200쪽)』 곰곰이 그 뿌리와 원인이 무엇인지 헤아리고, 목구멍을 넘어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하며, 내가 나를 상하게 하고 있음을 간파해야 하는 것이 분노이다.

바오로 사도는 “화가 나더라도 죄는 짓지 마십시오. 해가 질 때까지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에페 4,26) 하고, 오래전 현자는 “분노에 더딘 이는 매우 슬기로운 사람이지만 성을 잘 내는 자는 제 미련함만 드러낸다.”(잠언 14,29) 한다.

One thought on “성낼 분憤‧忿”

  1. 방가방가^_^
    글이 올라오지 않아 혹 ~~~
    다행입니다.
    요 근래 가장 가까운 사람의 화를 훅 받고서 그 화를 삮이는데 며칠 힘 들었는데 님의 글에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티볫에서 가장 큰 욕이 ‘화 잘내는 사람’ 이라고 합니다.
    “곰곰이 그 뿌리와 원인이 무엇인지 헤아리고, 목구멍을 넘어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하며, 내가 나를 상하게 하고 있음을 간파해야 하는 것이 분노이다.”
    오늘도 한 수 배워갑니다.
    – 꾸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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