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할 서恕

논어 위령공衛靈公 편 스물세 번째 단락에서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이 스승 공자에게 평생 행할 바에 관해 묻는다. 이에 공자는 ‘용서容恕’라는 단어에서 ‘용서할 서恕’ 글자 하나를 제시한다. 공자에 의하면 ‘용서’는 연마해야 할 덕이고 수련의 과정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같은 질문을 해오는 제자 베드로 앞에서 ‘용서’를 두고 말씀하시면서 실천도 실천이지만, ‘매정한 종의 비유’(마태 18,21-35)를 더해서 타인의 용서에 앞서 나 자신이 용서받은 자라는 생각을 먼저 해야 한다고 하신다.

그리스도교인의 용서는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갚을 길 없는 은혜를 입었으며, 그 은혜에 합당한 자가 아니므로 첫걸음은 ‘자기 고발’(self-accusation, 교황 프란치스코)이 먼저이고, 그렇게 고백함으로써 자기 죄의 어두움을 보아 빛으로 나아가는 존재라는 인식(토마스 아퀴나스)에 근거한다.

용서의 첫발이 자기 고발에 있음을 아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지혜이다. 용서는 내가 은총과 자비를 받은 이라는 생각 때문에 용서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용서는 자기 죄를 먼저 고백하면서 하느님 편에 서고, 자기 죄의 어두움을 보는 것이다.

그렇지만,

용서는 내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고 내 마음이 함께 가지 않아서 해야 하는 기도. 용서는 하느님의 용서를 배우고 그 힘으로 해야 하는 걸음마. 용서는 용서의 실천으로 하느님께서 나를 용서하실 유일한 길을 찾음. 용서는 다른 이를 통해서 보는 하느님의 얼굴이자 싫은 사람을 통해서 보는 하느님의 얼굴. 용서는 눈물 나는 나의 억울함을 주님께서는 알아주실 것이라는 믿음. 용서는 나를 힘들게 하고 상처를 준 그 사람도 하느님의 자녀임을 아는 것. 용서는 밉고 싫은 사람을 주님께 맡겨드리고 하느님께서 불쌍한 그 사람도 사랑하실 것을 알아가는 과정.

용서는 나를 힘들게 하고 상처 준 사람들, 심지어 원수와도 하나가 되게 하는 힘. 용서는 너도 하느님을 향하여, 나도 하느님을 향하여, 위로 올라가면서 너와 내가 하느님 안에서 점점 하나가 되는 것. 용서는 내 마음의 합리화와 이기적인 변명을 어느 날 조건도 없이, 이유도 없이, 일거에 그냥 놓아버리는 것. 용서는 나에게 주어진 싫고 또 싫은 그 소명과 굴레 안에서 눈물을 삼켜가면서라도 성화시켜나가는 어려운 발걸음. 용서는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그만두어버리는 것. 용서는 아픈 과거를 잊을 수 있어서가 아니라 용서할 수 있어서 함께 살기로 작정하는 것.

용서는 내가 절망하지 않도록 나를 지켜주는 힘. 용서는 울음과 슬픔 속에서도 감사와 미소로 돌아오는 은총. 용서는 내게 가장 큰 행복을 가져다주는 인내와 희생. 용서는 모든 것을 새롭게 하는 창조. 용서는 치유의 성사요 매일의 성체성사. 용서는 십자가상 주님의 마지막 말씀. 용서는 나에게 잘못한 이를 내가 용서한다는 주님의 기도. 용서는 ‘네가 용서했으니 너도 용서받아라’ 하시는 음성. 용서는 용서하겠다고 작정하면서 문득 돌아보는 수많은 나의 허물들. 용서는 내가 여기서 풀어야 천상에서도 풀리는 매듭. 용서는 성령의 은총. 용서는 주님의 능력이 일으키는 내 마음의 변화. 용서는 누군가를 용서하면서 내가 얻는 하느님의 힘. 용서는 절대 쉽지 않은 하느님 행위라는 예술.

용서해야 한다고 믿으면서 그러지 않으면, 하느님께서도 나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 하는 사람들, 용서해야 한다고 믿되 이는 하느님께서 나를 이미 용서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희망’은 전자에서 후자로 이동할 수 있는가이다.

One thought on “용서할 서恕”

  1.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그만두어버리는 것!
    하여 용서는.. 아름답다기 보다 짠한 얼굴이고,
    어쩌면 포기의 순간 쥐어지는 선택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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