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닐/갈 행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오가는 네거리 길의 형상에서 왔다고 알려지는 ‘다닐/갈 행行’이라는 글자는 ‘행’이나 ‘항’으로 발음한다. 인생길을 가리키는 ‘행로行路’, 사람이 살아간 발자취를 기록으로 남긴 ‘행장行狀’, 은밀하게 다니는 ‘암행暗行’ 등에서는 ‘행’으로 발음하고, 친족들의 서열인 ‘항렬行列’이나 다른 이의 형제를 높여 부르는 ‘안항雁行’, 군대의 행렬 대오를 가리키는 ‘항오行伍’ 같은 말에서는 ‘항’으로 발음한다. 한편, 서양식 가게인 ‘양행洋行’, 푸줏간을 가리키는 ‘육행肉行’, 약방을 가리키는 ‘약행藥行’. 금은방을 가리키는 ‘금은행金銀行’, 돈 가게인 ‘은행銀行’ 등에서 보는 ‘행行’은 ‘길’이나 ‘가다’라는 뜻이라기보다 가게나 상점, 회사이다.

이렇게 ‘다닐/갈 행行’은 네거리의 모습으로부터 길, 길을 함께 가는 사람들, 사람들이 붐비는 곳, 사람들이 모여 재주를 뽐내는 곳 등과 관련된 내용을 두루 지칭한다. 길 위에 있는 사람의 다리나 발의 형상은 ‘발 족足’이요 ‘발 지止’이다. 그래서 ‘行·足·止’ 이런 글자들이나 글자의 부분이 포함된 한자는 대개 길이나 걷는 동작과 관련된 글자들이면서 사람 발자취요 인간이 걸어가는 삶의 모습이다.

‘길 로路’는 사람의 발(足)이 마침내 다다르는 입구(各=뒤쳐져 올 치夂 + 입 구口)이고, ‘쉬엄쉬엄 갈 착辵’은 ‘조금 걸을 척彳’과 ‘발 지止’가 합쳐져 길(彳)을 가는(止) 모양새이다. 이 글자는 나중에 다른 글자들과 결합할 때 ‘辶’이라는 형태가 되면서 ‘통달할 달達’과 같은 글자를 표시하는데, ‘達’은 원래 ‘큰 대大’와 ‘彳’이 담겨 사람(大)이 다니는(彳) ‘큰길’이 되면서 사통팔달四通八達과 같은 경우에 쓰인다. 여기서 ‘통할 통通’은 속이 텅 빈 종이나 대롱(길 용/대롱 동甬)처럼 곧게 뻗은 길이다. ‘지하수 경巠’이라는 글자를 담은 ‘좁은 길, 소로 경逕’은 작고 좁은 길이다. ‘볼/의심하여 살필 구瞿’라는 글자를 行이라는 글자 가운데에 담으면 ‘갈림길, 네거리 구衢’로서 이쪽저쪽을 살피며 어느 길로 가야 할지를 망설이는 장면이다.

‘곧을 직直’은 사방으로 난 길(彳)에서 눈(目)을 들어 똑바로(뚫을 곤丨) 본다는 뜻이고, 지팡이를 짚은 사람이 길에서 두리번거리며 어디를 가야 할지 몰라 주저하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는 ‘의심할 의疑’는 갈 길을 잃고 머뭇거리면서 의심하는 경우이며, 장애물障碍物과 같은 단어에 쓰는 ‘거리낄 애礙’는 돌(石)에 길이 막혀 갈 곳을 가지 못하고 머뭇거리는(疑) 모습이다. ‘걸을 지㢟’와 한 획 차이가 있는 ‘끌/늘일 연延’ 등에는 ‘길게 걸을 인廴’과 길(彳)과 발(止)이 담기면서 머나먼 길을 가는 모습을 상징화했으며, 물길(川)을 따라 이동하며 가는(辵) 모습인 ‘돌 순巡’은 시찰이나 경계 따위를 위해 돌아본다는 것이고, ‘돌아올 반返’이나 ‘돌아올 회回’는 모두 가던 길을 되돌아오는 것이다. ‘보낼 송送’은 원래 두 손(두 손으로 받들 공廾)으로 불(火)을 든 모습에 辵(쉬엄쉬엄 갈 착)이 더해져 밤에 횃불을 밝히며 사람을 보내는 모습이다. 이에 비해 ‘거스를 역逆’은 사람을 맞이함을 말했는데, 거꾸로 선 사람(屰·거스를 역)으로 사람이 밖에서 들어옴을 그렸다. ‘돌아올 반返’이나 ‘돌아올 회迴’도 모두 가던 길을 되돌아(反·반, 回·회)옴을 말한다.

‘길 도道’라는 글자는 ‘쉬엄쉬엄 갈 착辶’에 ‘머리 수首’를 더해서 만들어졌다. 동물의 머리처럼 큰 눈(目)과 눈 위 이마에 달린 뿔을 그린 것으로 알려지는 ‘머리 수首’는 머리이므로 우두머리라는 뜻 외에도 자라나고 떨어져 나가고 다시 자라나는 뿔 때문에 ‘길 도道’가 될 때 자연의 순환이자 운행(辵)의 법이요 인간의 길이요 순리라는 뜻까지 더해 철학적 의미를 담는다. ‘길 도道’에 손을 뜻하는 ‘마디 촌寸’을 더하면 이런 길(道)을 가도록 잡아(寸) 이끄는 ‘이끌 도導’이다.

설마 그 뜻을 알까 싶은 아홉 살 어린이 김태연이 최근 부른 ‘바람길’의 ‘끝이 없는 길, 걷다가 울다가 서러워서 웃는다’는 길(신유진 작사), 故 최인호 작가의 ‘길 없는 길’, 그리고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며 말씀과 치유로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예루살렘을 향하여 끝까지 올라가야만 했던 ‘예수님의 길’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인생 자체가, 그리고 세상사 자체가 길이듯이 성경은 온통 길 위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죽음을 바라보는 나이에 정처 없이 고향을 떠나야 했고, 애지중지 얻었던 늘그막의 기쁨인 아들을 제물로 바쳐야만 했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길, 형 에사우를 피해 도망가다가 하느님의 땅에 이르고 하느님과 밤새 씨름했던 야곱의 길, 사막을 지나다가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하느님을 만나 자기 신발을 벗어야 했고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 약속의 땅까지 40년을 걸었던 모세의 길, 여왕 이제벨을 피해 도망가다 지쳐 죽기를 청하였으나 천사의 빵을 먹고 호렙산에 이르러 조용하고 부드러운 바람 소리 가운데 하느님을 만난 예언자 엘리야의 길, 하느님의 명령을 피해 도망가다 도망가다 큰 물고기 뱃속에까지 들어갔어도 절대 도망갈 수 없었던 예언자 요나의 길….

별빛 하나에 의지해서 오랫동안 걸어야 했던 동방박사들의 길, 표징을 만나러 사촌 엘리사벳을 찾아 산길을 홀로 걸어야 했던 성모 마리아의 길, 목숨을 걸고 이집트로 피난을 하여야 했으며 매년 예루살렘 순례길에 나서야 했던 성가정의 길, 예수님을 만나 생명을 얻고 용서를 얻으려고 찾아왔던 백인대장과 니코데모의 길, 두려움에 도망치며 부활하신 주님을 몰라보고 걷다가 빵을 나눌 적에야 예수님을 알아보고 돌아갔던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의 길,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반쯤 죽었으나 착한 사마리아 사람 덕에 목숨을 다시 얻었던 어떤 사람의 길, 이른 새벽에 부활하신 주님을 뵙자고 반신반의하며 무덤으로 내달리던 막달레나와 베드로, 그리고 요한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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