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 병病

‘병 질疾’이라고 하는 글자는 ‘병 병病’이라는 글자와 뜻이 같은 것 같아도 약간 다르게 쓰인다. 병상에서 팔을 늘어뜨리고 기댄 모양을 본뜬 ‘병들어 기댈 녁/역疒’에 ‘화살 시矢’가 들어간 ‘병 질疾’은 화살을 맞아 상처를 입은 사람이 끙끙거리고 있는 모습으로 비교적 가볍거나 전염성이 있는, 그러나 비교적 빠른 쾌유가 가능한 병에 쓰이는 글자이고, ‘병들어 기댈 녁/역疒’에 ‘남녘/셋째 천간 병丙’이 더해진 ‘병 병病’은 좀 더 심각한 병으로 만성적으로 몸져누운 경우를 뜻한다고 한다. 두 글자를 합하여 곧잘 질병疾病이라는 단어를 쓴다. 빨리 달리는 상황을 묘사하는 ‘질주疾走’라는 말에도 ‘병 질疾’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병 질疾’은 ‘병 병病’에 비해 위중하지 않은 것이 사실인 듯하다.

‘병 병病’은 ‘병들어 기댈 녁/역疒’과 ‘남녘 병/셋째 천간 병丙’이라는 글자의 합자이다. ‘남녘 병/셋째 천간 병丙’에 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물고기 꼬리 모양에서 생긴 글자라는 말도 있고, 제사상처럼 물건을 위에 놓고 옮기는 소위 포터 모양의 기물이라고도 한다. 또는 이를 대문이나 입구를 넘어 관문 같은 모양에서 시작하여 멀리 떨어진 곳을 뜻하는 ‘멀 경冂’이라는 글자 안에 ‘불 화火’라는 글자가 들어있는 모양이라고 풀기도 한다. 음을 빌어 ‘셋째 천간天干’을 가리킨다고 하는 것은 다소 생소한데, ‘천간天干’은 날짜나 하늘을 구분하여 소위 육십갑자六十甲子를 이야기할 때, 쉽게 말해 갑甲, 을乙, 병丙, 정丁… 할 때의 병丙이다.

얼마 전 노래 한 곡을 들었다. 이적(1974년~)이라는 싱어송라이터로 알려진 분이 작사와 작곡을 했다는 ‘꽃병’이다. 노랫말은 『생각나나요. 아주 오래전 그대 내게 줬던 꽃병 흐드러지게 핀 검붉은 장미를 가득 꽃은 꽃병. 우리 맘이 꽃으로 피어난다면 바로 너겠구나. 온종일 턱을 괴고 바라보게 한 그대 닮은 꽃병. 시절은 흘러가고 꽃은 시들어지고 나와 그대가 함께였다는 게 아스라이 흐려져도 어느 모퉁이라도 어느 꽃을 보아도 나의 맘은 깊게 아려오네요. 그대가 준 꽃병. 우리 맘이 꽃으로 피어난다면 바로 너겠구나. 온종일 턱을 괴고 바라보게 한 그대 닮은 꽃병. 시절은 흘러가고 꽃은 시들어지고 나와 그대가 함께였다는 게 아스라이 흐려져도 어느 모퉁이라도 어느 꽃을 보아도 나의 맘은 깊게 아려오네요. 그대가 준 꽃병 생각나나요, 아주 오래전 그대.』이다. 양희은(1952년~)씨가 부른 노래라는데, 나는 이무진(2000년~)이라는 젊은이가 부른 노래로 최근에 곱게, 감명 깊게 들었다.

노래 제목 ‘꽃병’은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꽃 甁’이다. 꽃을 꽂는 甁(병 병)이고 ‘꽃 화花’를 쓰는 화병花甁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꽃병 같은 시절이 있다. 이렇게도 찍고 싶고 저렇게도 찍고 싶은 사진 같은 시절이다. 온종일 턱을 괴고 바라보게 한 시절과 함께 시절이 흘러가고 꽃이 시들어진 꽃병을 바라보는 일은 자칫 병病이 된다. 화병花甁을 바라보다 가슴에 멍울이 지는 화병火病이 된다. 그러면 큰일이다.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남아야 하고 병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

“병 병病”에 대한 2개의 생각

  1. 한단 한단 엮어서 시와 노래처럼 읊어서 기도했던 지난 일들을 기억한다. 아무도 알아주는이 없어도 기도는 내 영혼속에서는 새롭게 꽃으로 변해서 미지의 세상에 펼쳐놓았던 아름다운 꽃밭을 볼 수 있었던 그 때, 빛살을 닮아서인지 현 세상에서는 볼 수 없었던 찬연하고 아름다운 꽃을, 어느 한순간 영원한 빛속에 가두어서 영원히 살아있을 꽃, 내 안의 그 님(하느님)께서 그리하신 일

    글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몇자납기고갑니다.

  2. “그리움으로 남아야지 병으로 남아서는 안된다”를 곰곰히 생각하게 하면서, … “인연” 길던 짧던 모두 하느님께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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