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울 고孤

텃밭에 오이를 비롯하여 여러 열매가 달리는 계절이다. ‘외로울 고孤’는 ‘아들 자子’와 ‘오이 과瓜’의 결합이다. ‘아들 자子’야 워낙 익히 아는 글자이므로 사족이 필요 없다. ‘오이 과瓜’는 양쪽 덩굴손과 덩굴손 사이에 덩그러니 맺은 오이의 모습을 그렸다. 오이나 참외, 호박이나 박과 같이 마디 하나에 열매 하나를 맺는 수많은 덩굴 식물이 있지만, 흔히 볼 수 있는 오이를 글자 이름으로 삼아 ‘오이 과瓜’라고 한다. 글자의 모양도 그러려니와 혼자는 기어오르고 설 수 없어서, 덩굴손으로 무엇인가를 감고 의지하는 식물이라 글자의 뜻을 새기는 데는 안성맞춤이다. ‘고아孤兒’라는 말에는 의지할 부모 없이 혼자 살아야 하는 외로운 아이와 오이 열매를 모습으로 담고, 글자 각각에 아이가 담겨 두 번 슬픈 말이다.

외로움은 이유 없이 나를 흔들어대는 공허함이다. 외로움은 차茶가 식는 줄 모르는 멍때림이다. 외로움은 짝짓지 못하는 상실과 부재, 분리이다. 외로움은 네가 아는 것과 내가 아는 것의 차이이다. 외로움은 어차피 혼자라는 자위이다. 외로움은 ‘이유 없이’라는 말의 되풀이이다. 외로움은 멀쩡하게 있다가도 불현듯 찾아오는 손님이다. 외로움은 어느새 저만치서 빤히 쳐다보는 바스락거림이다.

외로움은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변덕이다. 외로움은 습관처럼 뒤적이는 책장이다. 외로움은 견주어 생각나는 박탈감이다. 외로움은 억울함으로 가중되는 냉랭함이다. 외로움은 나만 그렇다는 서러움과 섭섭함이다. 외로움은 상처받지 않으려고 웅크린 살쾡이이다. 외로움은 너의 외로움과는 다른 나만의 것이다. 외로움은 보이는 것들마다 붙이는 이름표이다. 외로움은 새 한 마리, 소나무 한 그루, 달, 쪽배, 깃대, 종소리이다.

외로움은 내 몸을 힘들게 하는 위협이요 질병이다. 외로움은 우울과 도피, 중독이다. 외로움은 의미 없음에서 의미를 만들려는 아등바등함이다. 외로움은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눈물이다. 외로움은 무엇인가에 나를 미치게 하는 동력이다. 외로움은 누구, 무엇에나 있는 본질이다. 외로움은 어느 날 언제냐 싶게 숨는 재주꾼이다. 외로움은 견디는 아픔이 아니라 우주와 하나 되어 살아내는 삶이다.

“외로울 고孤”에 대한 2개의 생각

  1.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엉덩이 밑으로 두 손 넣고
    엉덩이를 들었다 놨다 되작거리다 보면
    손도 마음도 따뜻해진다.
    그러면 나는
    꽝꽝 언 들을 헤매다 들어온
    네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다

    -울고 들어온 너에게- 김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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