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몽夢

시험지에 답을 써야 했다. 여럿이 같이 있는 시험장이었는데, 각양각색의 무더기로 놓여있는 종이 중에서 자기가 원하는 시험지를 가져와 서술형 답을 쓰는 시험이었다. 다소 미적거리다가 내가 종이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는 내가 좋아하는 양면 백지가 모두 사라지고 여러 종류의 이면지만 잔뜩 있었다. 답을 어떻게 써야 할지를 알고 있었고 대충 어떤 순서로 답을 쓸 것이라고 계산까지 하면서 마땅한 종이를 찾기 위해 이면지들을 뒤적거리는 중에 안타깝게도 내가 원하는 그런 종이는 찾기가 어려웠다. 어떤 것은 색깔이 누렇고, 어떤 것은 한쪽이 찢어져 있고, 또 이것은 이미 어떤 것이 쓰여 있고 저것은 너무 크기가 작았다. 마침내 아주 깨끗하고 다른 종이보다는 약간 길쭉한 형태여서 마음에 드는 이면지를 찾았다. 두 장을 추켜들고 가져와 답을 쓰려는데 이미 머릿속에 생각했던 답의 골격 중에 두 번째 것만 생각날 뿐 첫 대목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도 내심 영리한 나로서는 곧 생각이 나겠지 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 내려고 조바심을 내다가 마감 시간이 임박했다. 알고 있는 답을 써보지도 못하게 된 상황이 안타까웠고, 이렇게 시험이 끝나고 마는가 하는 속상함 속에서 그만 잠이 깼다. 꿈이었다.

때로는 ‘맹’이라 발음하면서 ‘캄캄하다’를 뜻하기도 하는 ‘꿈 몽夢’이라는 글자를 풀어헤치면 ‘풀 초艹’(눈꺼풀) + ‘눈 목罒’(눈) + ‘덮을 멱冖’(덮다) + ‘저녁 석夕’(밤)이다. 글자의 생긴 모습 그대로를 기억하기 쉽게 하느라 『침대에 누워 잠을 자다 악몽을 꾸어 깜짝 놀라서 눈을 부릅뜨고 머리털이 비쭉 솟은 사람의 모습을 그린 것(조선일보, 생활한자, 2007년 11월)』이라 하지만, 『‘저녁 석夕’이 의미부이고 생략된 모습을 지닌 ‘어두울 몽瞢’이 소리부(하영삼, 한자어원사전, 297쪽)』이다. 이 글자는 원래 침상(爿)에 누워있는 사람(人)의 모습에서 눈(目)이나 눈꺼풀(눈썹 미眉)을 강조하여 그린 것으로부터 연유되었다. 혹자는 침상에 누운 사람이 손으로 눈을 가린 모습이라 하기도 한다. 중국의 간체자는 ‘저녁 석夕’ 위에 ‘수풀 림林’을 두어 ‘몽梦’이라 한다는데, 이는 어두운 숲속 낭만을 담았기 때문이라 한다.

현몽現夢(예지몽豫知夢), 계시몽啓示夢, 길몽吉夢, 흉몽凶夢, 태몽胎夢, 허몽虛夢, 자각몽自覺夢, 백일몽白日夢, 비몽사몽非夢似夢, 여진여몽如眞如夢, 일장춘몽一場春夢, 동상이몽同床異夢, 동상각몽同床各夢, 호접지몽胡蝶之夢, 삼도지몽三刀之夢, 나부지몽羅浮之夢, 남가일몽南柯一夢, 무산지몽巫山之夢 등등 꿈의 종류도 많고 관련 고사성어도 많다. 꿈은 젊은이들에게 희망이고 낭만이며 쫓는 것이지만, ‘꿈 몽夢’이라는 글자는 세월 깊은 옛 한자 문화권에서 여러 사자성어나 고사를 통해서 많은 경우에 부질없음과 무상無常의 내력을 지녔다.

꿈은 아직 오지 않은 미지이며 미래이고 확신이며 원하는 이 누구나 눈을 감기만 하면 얻을 수 있는 무상의 영역이다. 꿈은 사람들이 모두 같은 꿈을 꾸는 것은 아니면서도 대개 살 맛이 나는 장밋빛 낭만이지만, 가시들이 무성한 가시밭길이기도 하다. 현실, 지식, 역사를 넘어가면서 나를 열정으로 채근하는 꿈은 힘이 있다. 그렇지만 때때로 꿈은 나를 그 안에 가두어 소진하는 위험한 자위행위이다. 꿈은 좁쌀밥 한 공기가 다 익지도 않을 찰나이며 구름이 일었다 사라지는 것처럼 허상이고 부질없는 한바탕이자 망망대해에서 알맹이 없는 껍질로, 떠 있다고 할 것도 없는 떠 있음이다. 하느님 편에서야 잠든 인간을 위해서도 쉴 새 없이 창조하시는 ‘세 번 거룩하신 분’의 깨어 있음이고, 인간 편에서는 꿈에라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욕망이요, 또한 꿈에라도 더럽지 않기를 바라는 소망이다. 꿈은 앞뒤가 들어맞지 않아서 사람들이 정신착란이라고 말하더라도, 간절한 소망과 한 짝이 되어 우주의 섭리를 따라 꿈일 것만 같았던 꿈에 다가가는 듯한 착각 아닌 착각 속에서 점차 현실이 되어 나를 강화하는 신화이고 이유이며 자유이고 용기이다.

꿈의 비슷한 말은 소망이나 열정이지만 반대말은 두려움이다. 간절한 소망과 한 짝이 되었더라도 꼭 이뤄야만 한다는 두려움이 소망을 압도할 때는 이미 꿈이 아니다. 거꾸로 소망이 두려움을 압도하면 평범한 사람은 비범한 사람이 된다. 꿈이라는 선택과 결정 앞에서 두려움과 망설임은 핑곗거리와 희생양을 찾느라 두리번거린다. 꿈은 어차피 성취와 와해 사이를 오가는 리듬이다. 화려한 성취에서 오는 숨 가쁜 떨림은 하루하루가 새롭지만, 고통과 체념, 비겁함으로 치장된 와해는 우울이다. 그래도 사람은 늘 자기 미화를 찾아내는 재주가 있어서 울지 않고 참지 않으며 슬픔을 즐길 줄도 아는 교훈을 얻었다.

꿈은 말과 기호와 시간이 어우러지는 유희이며, 꿈꾼 것들과 꿈도 꿔보지 못한 것들 사이의 간극이고, 길 떠난 사람에게 바람이라도 전해주기를 바라는 편지이며, 어쩌면 실현과 좌절 사이에서 좌절 쪽에 추가 쏠려있는 저울이고, 꿈인지 아닌지를 모르는 미지未知이다. 꿈은 아픔을 회피하면서도 아픔을 즐기는 불장난이기에 운명의 올가미이자 함정이며 슬프고 아픈 순간을 넘어가는 방식이고, 어느 순간 되돌아갈 수 없는 심연을 건너버린 후회이며 다른 이의 강요와 압박이기도 하지만, 결국 혼자만의 결정이고 책임이다.

꿈은 꾸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과 끝까지 밀고 나가는 사람과의 차이이고, 무엇이 되려는 시도가 아니라 이미 무엇으로 사는 것이며, 꿈이었을까 싶은 날에 돌아보며 쏟아내는 말이지만, 결국 꿈 밖으로 돌아가 버린 대부분 사람의 일상이다. 그럴 때 꿈은 차마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것들을 혼자 즐기는 놀이이고, 나의 꿈에 우주의 음모가 협력하는 과정이며, 꿈에 대한 나의 믿음이 사라질 때, 그리고 섭리가 나를 다른 길로 인도할 때만 비현실이다.

꿈은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고, 모든 사랑 이야기처럼 하나의 사랑이 사라질 때 다른 사랑이 찾아오는 것이며, 무슨 꿈인지도 모르며 살기보다도 나를 잃는 아픔을 무릅쓰고자 하는 것이고, 이쪽과 저쪽을 넘어 사랑만이 남을 때이며, 참 다루기가 어렵고 이해하기가 쉽지 않으며 해명할 수가 없다.

꿈은 낯선 나라에서도 모국어로만 꾸어지는 것이며, 밤의 언어이고, 결코 멈출 수 없는 것이며, 시간이 없다 하고 삶이 모험임을 포기할 때, 안주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때에 비로소 죽고, 꿈이 죽으면 결국 나도 썩어간다. 꿈속에서도 깨어 있을 때의 기억으로 숨이 쉬어지듯이 죽은 사람도 그에 대한 기억으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이 꿈이고, 내 안의 이상들이 시들어버리고 날개가 꺾일 때 마음 둘 곳이 없어 하는 방황이며, 매일 밤 세상의 소음과 이미지의 유혹들에 방해받는 연약함이고, 몸과 감정과 영혼과 함께 보살펴야만 산다.

꿈은 늘, 평생 온 세상을 싸돌아다니면서나 살고 싶은 욕망이고, 아파트의 밝은 전등 아래에서보다는 산사의 촛불 아래에서 훨씬 더 친숙한 것이며, 나의 꿈에 수많은 사람을 따라 죽게 할 수도 있어서 내가 우는 것이고, 생산하는 사람이 목숨을 바치고 책임을 져야 하는 숙명이며, 달콤한 것이면서도 씁쓸한 것이다. 꿈은 내 앞에 펼쳐진 한없는 바다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라보는 것이며, 낭만과 이상을 소비와 일회성으로 대체하려는 악마의 장난이고, 반드시 대가가 따르는 몹시 위험한 것이다.

꿈은 엄마 아빠가 읽어주는 동화 속에 그렇게 잠들고 성장하는 어린아이이고, 정말 내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것을 찾아 의지와 역량을 훈련하는 과정이며, 몇 년을 두고 누군가를 찾으려는 갈망이지만, 막상 찾았을 때의 실망이거나 다른 누군가를 다시 찾으려는 시도이고, 도달할 때 내가 애초에 찾으려던 것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졌는지를 알게 되는 자각이며, 엄마를 잊을 때쯤에야 찾아지는 현실이고, 끝 간 데가 없는 끊임없는 변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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