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 반伴

흔히 배우자를 가리키거나 나를 이루는데 필요한 다른 한편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반려伴侶(짝 반伴·짝 려侶)’라는 말이 있다. 배우자를 인생의 반려라고 할 때나, 애완동물을 일컬어 반려동물이라 할 때 이 말을 사용한다. 짝을 이루어야만 완전체가 되는 상황을 가리킨다. ‘짝 반伴’이라는 글자는 ‘사람 인人’이라는 글자와 ‘반 반半’이라는 글자의 결합이다. ‘반 반半’이라는 글자는 ‘소 우牛’와 ‘여덟 팔八’의 결합이어서 소를 반으로 가른 모습을 그린 것으로 ‘절반’이라는 뜻이 있다. 이 글자를 이용하여 함께 길을 가는 사람을 두고 ‘도반道伴’이라 하고, 함께 어우러져 무엇인가 같은 것을 도모하는 상황을 두고 ‘동반同伴’이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동반’을 말할 때는 ‘반伴’ 대신 ‘함께 갈 반㚘’이라는 글자가 먼저 쓰였었다. ‘함께 갈 반㚘’은 ‘짝 반伴’과 다른 글자이지만 통자通字이기도 하다. ‘함께 갈 반㚘’은 ‘지아비 부夫’라는 글자가 두 개 합쳐진 글자로서 이 글자에는 두 사람이 손이라도 잡고 가듯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이 담겼다. 이렇게 함께 같은 길을 가면 ‘동행同行’이라 하고, 뜻이 같은 사람끼리는 서로를 ‘동지同志’라고 부르며, 늘 친하게 어울리며 짝이 되는 편을 두고는 우리말로 ‘동무’라고 부른다.

내가 결코 되어보지 못하고 나 자신이 변변치 못한 주제라서 아주 제한된 건너편의 얘기이며, 다소 부정적일 듯한 관찰이고, 몇 가지의 관찰에 불과하며, 절반은커녕 반의반도 되지 못할 이야기이지만, 롤-모델, 멘토, 소울-메이트, 안내자, 조언자, 수호천사, 보디가드, 친구, 동지, 도반道伴, 동행자, 동반자…그 누구든 우리가 서로 이루는 ‘짝 반伴’은 어떤 때 실로 놀랍다.

아주 일상적인 얘기를 하다가 생각지도 못한 아주 뜻밖의 상황으로 반전을 일으키며 전혀 다른 이야기로 비약한다. 무엇인가를 물으면 그것을 묘한 논리로 되물으며 사람을 엄청나게 당황하게 한다. 아기자기할 것도, 그렇다고 낭만이랄 것도 없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목숨보다도 더 소중하게 여긴다. 무엇인가를 기념하는 데 서로 날짜가 안 맞아 당겨서든 미뤄서든 합의하여 기념했으면 그만일 텐데 꼭 그날 그 순간이 중요하다고 고집하여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상상 못 할 재주를 부린다. 국 하다가 밥하고, 밥하다가 반찬 하며, 반찬 하다 문자 하고, 문자 하다가 드라마 보고, 드라마 보다가 빨래도 하는 이 모든 것이 동시에 가능한 기적 같은 멀티-태스킹이 된다. 일에 열중하다 보면 그 일에 몰두하게 마련이어서 그 일만 생각하고 하루해가 지날 수도 있는데, 종일 다른 생각은 왜 하지 않았느냐고 다그치면서 짜증이 나게 한다.

여행 중에 밥을 먹는 것은 그저 자동차 기름 넣듯이 샌드위치로 때워도 되련만, 또 잠은 다음 날의 여행을 위해 그저 저렴하게 씻고 잠만 자면 되련만, 밥은 반드시 분위기 있는 곳에서 식탁보 깔고 냅킨 두르며 먹어야 하고, 잠은 로비가 높은 호텔에서만 자야 한다고 고집하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비합리성을 진지하게 발휘한다. 더워서 못 살겠는데, 추워서 못 살겠다 한다. 저마다 위대한 사랑을 꿈꾸는데 정작 위대한 사랑은 전혀 아닌,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대한 사랑으로, 지극 정성으로 한다. 어느 날 기분이 무척 좋다가 이유를 가늠할 길이 없고 전혀 짐작도 할 수 없는 예측 불가의 기분으로 다운이 되어 주변을 긴장시킨다. 기억과 상상을 혼동하면서도 자기 기억을 고집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그 기억이 바르다고 동의하게 하는 억지를 부린다. 스치듯이 암시된 불순을 귀신같이 잡아내는 직관력으로 두려움을 자아낸다. 빤히 보이는 거짓말로 둘러대도 자기 위안과 자기 미화 속에 안심하고 안주하는 어리석음을 즐긴다. 이미 지긋한 지어미이고 지아비인데도 10대 소년 소녀나 된 것처럼, 또 다른 사랑을 꿈꾸며 비밀을 간직하려 든다.……

약간의 거짓과 불순, 약간의 타협과 비겁함, 약간의 긴장과 불안, 약간의 허세와 뻥, 약간의 기쁨과 불만, 약간의 양보와 자기기만, 약간의 허기짐과 배부름, 약간의 외면과 밀당, 약간의 취기와 비틀거림 속에서 그렇게 날들이 가고 우리는 인생을 함께 산다. 사람은 누구나 나 안의 나를 너에게서 발견하게 마련이고, 존재의 예민함이 맞닿는 곳에서 서로 동질감과 자기애를 느끼게 마련이며, 언제 어디서고 찾으려고만 하면 찾을 수 있는 그 thin-places가 오로지 너와 나만의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그렇게 우리는 웃픈 ‘짝 반伴’의 한쪽을 산다.

“짝 반伴”에 한개의 의견

  1. 자신에게 반려가 있다는 사실을 은근히 자랑하는 이들을 보며, 참 많은 생각을 했던 요즘입니다.
    남편이라는 울타리를 자신의 능력이라도 되는 양 으시대는 모습이 정말 ‘웃프’더군요.
    짝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분명 행복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짝의 부재를 보며 혀를 차고, 상대적 우월감에 으시댈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어쩐 일인지 심사가 꼬이고 짜증지수가 높아져 꼭 누군가와 크게 한판 싸운 기분이 들었답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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