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루淚

‘눈물 루淚’라는 글자는 ‘눈물, 촛농, 울다’라는 뜻을 담은 글자이다. ‘물 수氵’가 의미부이고 ‘어그러질 려戾’가 소리부이다. 글자를 좀 더 풀어헤치면 ‘물 수氵’+ ‘집/지게 호戶’+‘개 견犬’이다. ‘지게’나 ‘출입구’라는 뜻을 가진 ‘집 호戶’라는 글자는 외닫이 문, 문의 반쪽을 그렸다. 이렇게 풀어헤친 대로 외우기 쉽게 뜻을 풀면 개가 문 안에 갇혀 나가려고 발버둥을 치며 우는 셈이다. ‘눈물 루淚’라는 글자를 간결하게 ‘물 수氵’와 ‘눈 목目’을 더하여 ‘눈물 루泪’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리움의 눈물, 혼자만의 눈물, 가슴을 쥐어뜯는 눈물, 뉘우침으로 기워 갚는 눈물, 회개의 눈물, 말라서 깊은 자국이 된 눈물, 안으로만 번지는 눈물, 훗날의 약속을 기약하는 눈물, 웃음의 시간을 넘어 눈물의 시간에 흐르는 눈물,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보며 나를 내가 괴롭히는 눈물, 승자의 눈물, 패자의 눈물, 눈물로 미소를 감추고 미소로 눈물을 감추는 광대의 눈물, 참고 또 참아서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눈물, 비겁과 무기가 되는 눈물, 꾸밈과 가식이 없는 해방의 눈물, 결코 이름을 가져본 적이 없는 민중의 눈물, 하나가 되는 공감의 눈물, 삶과 죽음이라는 두 개의 울음이 울려대는 눈물, 땅과 하늘이 함께 우는 눈물, 비가 되어 흘리는 하늘의 눈물, 하느님의 눈물, 우주 만물의 눈물, 거룩한 성사의 눈물, 치유의 눈물, 시편과 찬미가를 따라 흐르는 눈물, 베갯잇을 적시는 눈물, 달콤한 눈물, 은총의 눈물…

눈물은 저마다의 이름과 목소리를 가졌다. 눈물은 신비한 언어이다. 앙투안 생 텍쥐페리Antoine Saint-Exupéry(1900~1944년)가 어린 왕자를 통해서 『눈물의 땅은 그렇게도 신비스러운 곳!』이라고 했던 말처럼 기쁠 때건 슬플 때건, 사람이 울고 세상이 울며 만물이 운다. 눈물은 영혼을 달래주는 말이고 누군가와 소통하는 비언어적인 언어이다. 때로는 나를 보아달라는 표현이고, 때로는 나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은유이며, 고독 속에서 나 자신에게 말하는 마음의 속삭임이다. 눈물은 항상 웅변이다. 눈물은 우리 신체의 감각 훈련을 통해 다른 이 앞에서 내가 그와 함께 이루는 예술이다.

우리는 ‘안구건조증’이라는 병을 앓는 시대를 산다. 어떨 때는 울 줄도 모르고, 우는 이를 바보스럽다고 경멸하거나 조롱하기도 하며, 마음이 굳어져 ‘완고(스클레로카르디아, σκληροκαρδία, sklerokardía, 참조. 마태 19,8 마르 10,5;16,14 신명 10,16)’하게 살아간다. 눈이 먼 사람도 우는 것을 알고, 프랑스의 철학자 자끄 데리다Jacques Derrida(1930~2004년)가 주도면밀하게 설파한 것처럼 눈은 오직 보는 것만을 위한 신체의 기관이라기보다 오히려 울기 위한 기관이다. 소수의 몇몇만이 알겠지만, 그리스도교의 오래된 전통에는 눈물의 은총을 얻기 위한 기도도 있다. 강렬한 내면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마음, 가엾은 마음, 자비로 충만한 마음이 있는 곳에 눈물이 있고, 교만과 거만, 그리고 자기만 생각하는 자기애(필라우티아, ϕιλαυτία, philautia)라는 병에 걸린 곳에는 눈물이 없다는 것을 안다.

때로 눈물은 우리 안의 내밀한 곳, 내가 함께 있고 싶지 않은 곳에서도 터져 나온다. 빛이 없는 깊은 심연, 우리 자신이 절대 원하지 않는 지옥의 영역에서도 눈물은 솟는다. 그때 눈물은 깊은 상처가 쏟아내는 시詩이며 나를 씻어내리는 정화이다.

우는 자여, 그대에게는 복이 있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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