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애愛(2)

광고판에서 ‘사랑을 찾기는 어렵지 않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관련 사이트를 홍보하는 내용을 보았다. 과연 사랑을 찾기가 그렇게 쉬울까? 영국의 시인 오든W. H. Auden(1907~1973년)의 <장례식 블루스Funeral Blues>를 찾아 다시 읽었다. 시인은 『…그는 나의 북쪽이고 나의 남쪽, 동쪽이고 서쪽…나의 일하는 평일이고 일요일의 휴식…나의 정오이며 나의 자정, 나의 대화이며 나의 노래였다. 사랑이 영원한 줄 알았는데, 내가 틀렸다.…이제는 아무것도 소용이 없으니까.』 하였었다. 가위의 이쪽저쪽 날과 같은 사랑과 죽음, 아니 사랑과 생명의 무게를 단다면 어느 쪽이 더 무거울까? 믿음, 소망, 사랑 중에서 사랑이 맨 나중까지 남는다는 말은 무엇일까? 사랑이 깊은 만큼 그 사랑을 배반할 수 없다는 말은 진실일까?

무엇이 사랑인지 사랑에 대한 진실은 분명하지 않지만, 찾아야만 하고, 경험해야만 하는 것이며, 시도해보아야만 하는 것임이 틀림없다. 사랑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인 체험이다. 사랑은 가련한 우리 인생살이에서 어쩌면 구원과 만족을 피부로 느끼는 유일한 체험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사랑을 찾고 기다리며 갈망한다. 행여 어떤 사랑의 조짐이라도 보이면 그 사랑이 어서 피어나고 자라나기를 열망하면서 우리의 모든 관심은 온통 거기에 쏠린다. 영원하기를 바라며, 거부를 당하더라도 끝까지 가고 싶은 것이 사랑이며, 죽음마저도 이기는 것이 사랑이다. 그렇지만 실제 우리 인간이 온전히 이룰 수 있는 사랑이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사랑은 그 자체로 많은 모순을 담는다. 사랑에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도 담겼다. 어려움, 갈등, 위선, 배반, 막연할지라도 이미 이별과 죽음까지 내다본다. 그런 까닭으로 아픔이 없는 사랑이 없고 자신을 잃는 과정이 없는 사랑은 없다. 고통, 모순과 이율배반의 슬픔, 살아내야만 하는 부적절한 현실을 겪어가면서 우리는 우리가 사랑의 능력을 지니고 태어났는지 의심하기도 한다. 인간끼리 과연 진정한 사랑을 할 수는 있는 것일까, 서로 하나가 되는 완벽한 조화를 이룰 수는 있는 것일까, 스스럼없이 서로를 받아들이고, 서로에게 서로를 더해서 더욱 아름답고 더욱 인간다워지는 사랑, 인격적으로 서로를 대하고 존중하는 그런 사랑이 과연 있을까? 사랑은 고집스럽다. 모험이다. 나의 생명을 너의 생명에 덧대어 네가 죽지 않을 것이라는, 그런 사랑을 아는 자만이 누군가에게 ‘나는 너를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랑에는, 특별히 사랑에 빠지는 순간에는, 불가능을 뛰어넘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 항상 같이 있고 싶은 마음, 같은 것을 생각하며 같은 세상을 함께 느끼면서 누리고 싶어 하는 것들이 따라붙는다. 나 자신이 아닌 분명한 타자인 그와 나 사이에 그 어떤 거리도 용납하지 않으려 든다. 그래서 사랑에 필요한 것은 내면의 치열한 싸움과 절제이다. 상대방을 소유하려는 욕망과 함께 상대방에게 나를 덧씌우려는 욕구가 강한 사랑의 때엔 더욱 그렇다. 그러다가도 진정한 사랑은 거의 불가능하리라는 어려움이 몰아친다. 사랑하는 만큼 구속하고 구속받기를 원한다고 하면서 사랑하면 할수록 갈망하게 되고, 갈망하면 할수록 상대방을 소유할 때까지 나를 덧씌우고 싶어 한다.

우리는 사랑으로 이루어진 존재이고, 사랑으로 엮어진 존재이며, 사랑을 구걸하는 존재로서 모순 속에 사랑을 산다. 우리는 사랑이 필요하지만, 사랑은 자유도 필요하다. 약간의 사랑을 위해 우리는 기꺼이 우리 자신을 팔아넘기는 매춘을 감행하기도 하고, 사랑을 잃지 않기 위해 상대방의 주위에 울타리를 둘러치기도 하며, 배반의 아픔을 겪지 않으려 상대방에게 폭력을 불사하기도 하고, 상대방이 진정 나를 받아들이려는지, 그와 나의 차이가 무엇인지, 그의 방식과 동기, 그의 선함과 악함이 무엇인지를 알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막무가내가 되기도 한다. 사랑과 자유가 결합하는 것, 상대방의 자유에 온전히 동의하는 것, 다른 사람이 나와 같으면서도 같을 수 없으며 다름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사랑은 사랑 그 자체로 충분한 것일까? 나 혼자만 사랑하더라도 사랑이면 그냥 그대로 충분한 것일까?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 나의 사랑으로 변화되기를 거부하더라도 사랑은 지속될 수 있는 것일까? 참사랑이라면 그럴 것이다. 사랑은 사랑으로 충분하며, 결코 보상을 바라지 않고, 무상과 자유 안에 있으며, 언제 어디서라도 시간과 공간의 장애를 뛰어넘기 때문이다. 『진실한 사랑은 “사랑해!”를 아무리 반복해도 지루할 줄 모른다.(풀톤 쉰Fulton Sheen 추기경, 1895~1979년)』

사랑 이야기를 담은 솔로몬의 아름다운 노래요 비유인 아가서는 “내 영혼이 사랑하는 이, 나의 애인, 나의 연인,…거리와 광장마다 돌아다니며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으리라.…나의 누이 나의 신부…가장 아름다운 이…나의 비둘기…서두르셔요…서둘러 오셔요.”(아가 1,7.9.14;3,2;5,1;6,1.9;8,14) 한다. 『“사랑”이신 하느님은 가짐, 소유가 없는 충만한 가난이시다. 오직 사랑이실 뿐이어서 인간을 향한 절대적 의존이시다. 내려다보시는 법이 없고 자기를 지우시기에 완전한 겸손이시다. 그래서 하느님 사랑의 은유인 인간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려 해도 온 생애가 필요할지 모른다.(프랑수아 바리용François Varillon, 1905~1978년, 흔들리지 않는 신앙Joie de Croire-Joie de vivre, 심민화 옮김, 생활성서, 2000년, 47-55쪽 참조)』

“사랑 애愛(2)”에 한개의 의견

  1. 사랑의 질과 양을 재는 도구가
    이 마음이란 것 뿐이라..
    사람도, 하늘도 속이려 하고..
    혹은 속이고 있다는 사실 조차 모르는 게 아닐까 하여 맘 한켠에 돌덩이가 자리합니다.
    수일 계속 되는 먹구름 때문일까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