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을 방放

집시들의 최초 출신지는 보통 인도로 알려진다. 하지만 영국에서 집시들이 이집트에서 온 것으로 잘못 알고 이집시안(Egyptian, 이집트사람)이라 했다가, 나중에 이 말의 머리와 꼬리가 잘려 나가면서 집시gipcy가 됐다고도 한다. 유럽인들은 집시를 보헤미안Bohemian이라고도 부르면서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아서 자유로운 존재로 인식하기도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속어로 집시들을 ‘징가리Zingari’라고 일컫는데, 그와 관련된 말의 역사는 유럽 이곳저곳에서 오래되었고, 그 뜻은 다양하면서도 공통으로 ‘untouchable’을 담는다. 집시를 ‘보헤미안’이라고도 부르는 까닭은 『보헤미안의 어원은 프랑스어 보엠Bohême으로, 체코의 보헤미아 지방에 유랑 민족인 집시가 많이 살고 있었으므로 15세기경부터 프랑스인이 집시를 보헤미안이라고 불렀던 것에서 유래된다. (이 말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사회의 관습에 구애되지 않는 방랑자,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는 예술가·문학가·배우·지식인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고, 실리주의와 교양 없는 속물근성의 대명사를 지칭하는 필리스틴Philistine에 대조되는 말로도 쓰였다.…이 말은 집시처럼 방랑하는 방랑자vagabond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위키백과)』에서 대충 짐작이 가능하다.

집시, 유랑민, 보헤미안, 방랑자, 징가리Zingari 등을 표현하기에 적당한 글자는 다소 부분적이지만 아마도 ‘놓을 방放’일 것이다. 放이라는 글자가 ‘놓다’, ‘내쫓다’, ‘그만두다’라는 뜻을 가졌기 때문이다. 放은 ‘모 방方’과 ‘칠 복攵’이라는 글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方이라는 글자는 자원이 분명하지 않지만, 소의 등에 물리는 쟁기를 그린 것이라고 보아서 ‘방위’나 ‘방향’이라는 뜻을 갖는다고 하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 이렇게 ‘나아가다’라는 뜻을 가진 方에 攵을 결합하면서 몽둥이로 내쳐서 보낸다는 뜻을 표현하고 나쁜 사람을 멀리 쫓아내는 상황까지 담았다 하니 집시를 표현하기에 적당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집시라는 말은 ‘놓을 방放’처럼 부정적인 뜻에서 출발하여 오늘날에 이르러 낭만적이고 자유분방함, 그리고 예술적인 기질이나 적극적인 열정과 독특함이라는 긍정적인 뜻으로까지 진화한다. 그래서인지 ‘집시’는 어느새 많은 이의 동경이 된다.

‘놓을 방放’에 반대되는 글자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나처럼 수도원에 갇혀(?) 사는 사람은 ‘놓을 방放’에 반대되는 삶을 살기로 결정돼 있기 때문이다. 원래 가톨릭교회의 오랜 전통에서 수도자의 삶은 ‘정주定住’에 대한 갈망이다. 구약 만남의 천막으로부터 시작하여 회당과 성전, 교회와 수도원, 심지어는 ‘봉쇄封鎖’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붙여도 그럴듯하고(예. 봉쇄수도원), 또 사람의 은밀한 깊은 곳에 당신 거처를 마련하신다는 하느님은 항상 내면을 즐겨하시고 흔들림 없이 고정된 삶을 즐겨하신다. ‘놓을 방放’의 반대편을 생각하면서 글자의 생김새 때문인지 자꾸 사방이 둘러쳐진(에워쌀 위囗) 곳에 사람(사람 인人)이 들어서 있는 ‘가둘 수囚’가 더 생각나는 것은 오지랖일까? 어려서부터 수도원에 살았던 나는 ‘유목遊牧(놀 유遊·칠 목牧, 노마드nomad)’을 미화하고, ‘정할 정定’과 ‘가둘 수囚’의 저편 ‘놓을 방放’을 그리워하면서, 가지도 못할 길이요 가서도 안 되는 길을 꿈꾸고 거짓말하며 살았던 것이 틀림없고, 어쩌면 나이 든 지금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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