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목木

나무 목

나무 목이라는 글자는 나무가 땅 밑에 뿌리를 내리는 한편 대지를 뚫고 솟아오르는 모습을 상형한 글자이다.

하느님께서는 낮과 밤, 그리고 물과 뭍을 가르신 다음 뭍에 땅은 푸른 싹을 돋게 하여라. 씨를 맺는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제 종류대로 땅 위에 돋게 하여라.”(창세 1,11) 하심으로써 땅 위에 맨 먼저 나무를 만드셨다. 그렇게 온갖 것을 지으시고 사람까지 만드신 다음에는 다시 낙원 동산 한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창세 2,9) 그렇게 인간의 역사와 비극이 나무에서 시작한다. 동산의 나무 이야기는 나무로 만든 구유에서 태어나신 구세주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마침내 하느님께서는 골고타 산의 십자가 처형 나무로 인간을 구원하시고 다시 한 번 새로운 역사를 지으신다.

나무는 이처럼 모든 것의 시작이다. 나무는 계절로는 봄이고, 인간의 다섯 가지 도리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오상五常으로는 이며, 사방四方의 방위로는 동쪽이고, 맹자님의 사단四端으로 보면 측은지심惻隱之心이며, 오륜五倫으로는 부자지간의 도리이고, 오장육부五臟六腑의 간이며, 맛으로는 신맛이고, 하루의 때로 보자면 새벽이다. 인간이 있기도 전부터 이미 있었던 나무는 할 말이 참 많겠지만 아무런 말이 없다.

제주에는 비자림榧子林이 있다. 군락을 형성한 나무들이 백 년씩은 쉽게 넘어, 많게는 천 년을 가까이 살았다는 왕나무들이 있다. 인간이 쉽게 가늠할 수 없는 오랜 세월을 몸으로 살아낸 나무들은 존경스럽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베어진 나무의 그루터기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나무들은 나이테로 시간이 파도친 흔적들을 담아 아름답고 독특한 결을 만든다고 했지만, 몇 백 년을 족히 살았다는 나무의 나이테는 쉽게 보이지도 않고 헤아려지지도 않는다. 천 개의 나이테를 새기다가, 오래고 오랜 세월을 살다가, 나이테가 뭉그러지고 말았던 것일까? 땅 위의 나무가 천 년이라면 그 뿌리는 또 과연 몇 년이나 되는 것일까? 비로소 세월이라는 것을 이야기 할 수 있을 만큼 오랜 시간 동안 으깨지는 아픔 앞에서 사람들은 저절로 겸손해진다. 그 겸손은 혼자서 긴 세월을 살아냈다는 올곧음이어서가 아니라 순환으로, 섭리로, 생태로 그렇게 주변과 어우러질 수 있었던 까닭 때문일 것이다. 나무들은 속이 텅 빈 채 거죽만 남다시피 한 상태로도 여전히 살아간다. 사람들이 오래도록 속을 썩다보면 마음이 넓어지듯이 나무도 속이 썩다가 그렇게 속이 넓어지는 것일까?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숙명에 초연함일까?

천 년을 사는 동물은 없어도 천 년을 사는 나무는 있다. 오래 사는 나무들은 고급 가구가 되어 귀한 자리를 차지하는 비자 나무만이 아니다. 마을의 어르신 놀이터와 어린이들의 고향 추억이 되는 느티나무, 노란 가을 잎으로 우리들의 가을 낭만을 만들어 주면서도 오래 오래 살아 화석이 되기까지 고약한 냄새마저 아우르며 자신을 지켜내는 은행나무, 귀찮은 벌레들이 꼬이면서도 누구나의 자동차 안에 일정 기간 동승하는 향기의 열매를 지닌 모과나무,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임을 뽐내면서 껍질이 붉은 빛을 띠고 속살도 유달리 붉어 주목朱木이라는 이름을 자랑하는 주목, 왠지 옆에만 있어도 내 몸에 그 향이 벨 것 같고 몽당연필이 될 때까지 향나무 연필이 되어 친구가 되어주는 기분 좋은 향나무, 한 그루에 백양나무와 버드나무, 느릅나무 등 세 종류의 나뭇잎이 달리기도 한다는 살아 천 년 죽어 서서 천 년 죽어 누워 천 년 도합 삼천년이라는, 주목보다 한 술 더 뜬 호양나무, ‘변하기 쉬운 사랑이라는 나무답지 않는 얄궂은 꽃말을 지닌 조록나무이처럼 나이 많은 나무들에는 사람이 담겨있다.

인생백년人生百年, 송수천년松壽千年, 학수만년鶴壽萬年’, 이것이 나무 심는 사람들의 마음이라 했다. 기껏 백년인 인생이 천년 가는 소나무를 심어 만년 사는 학을 불러들이는 마음이라 했다. 나는 나의 인생에 무엇을 심었고 무엇을 불러들이려고 했던 것일까? 아니 섭리가 없다면 과연 또 그 무엇이라도 심을 수 있는 것이기나 할까? 심기는 고사하고 심겨있던 것마저 파헤쳐 놓았던 것은 아닐까? 말 없는 나무 앞에서는 나도 말이 없어진다.

Posted by benji

2017/02/24 11:29 2017/02/24 11:29

잠(3)

(3)

인생이 일장춘몽一場春夢이고, 미처 밥 한 솥 다 끓여내지 못한 한단지몽邯鄲之夢이며, 한낱 나비의 꿈인지 꿈의 나비인지 모를 호접지몽胡蝶之夢일지라도, 일상이 눈물 젖은 탄식의 침상일지라도, 불면의 베개를 베고 누웠다 하더라도, 잠은 자야만 한다. 오늘도 자야하고 내일도 자야하며 관절의 마디들이 풀어질 때까지, 아니 그 너머까지 자야한다. 이 세상이 사업의 장소가 되어 시끄럽고 소란한 경제 성장의 소음 때문에 자는 법을 잃어가는 것이니 한 번이라도 인류가 숨을 돌리는 것을 본다면 기쁨일 것이라던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1817~1862)의 말처럼 낮밤을 혼돈混沌 속에 몰아넣고 만 이 세상은 제대로 자는 법을 배워야 한다. 고대 의학이 빛과 공기 음료와 음식 운동과 휴식 잠과 깸 배설과 제거 영혼의 성향(감정과 욕망)이라는 6가지 조절시스템이 인간의 본성에 맞게 배열되어야 한다고 했으니, 고대 사람들도 알았던 그 상식대로 현대 사람들은 더 늦기 전에 잠과 깸을 조절해야 한다. “광야의 까마귀와 같아지고 폐허의 부엉이처럼 되었으며, 잠 못 이루어 지붕 위의 외로운 새처럼 된”(시편 102,7-8) 이들이 자야한다. 잠의 깊은 뜻을 깨우치며 제대로 자야 한다.

Posted by benji

2017/02/06 19:31 2017/02/06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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