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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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일장춘몽一場春夢이고, 미처 밥 한 솥 다 끓여내지 못한 한단지몽邯鄲之夢이며, 한낱 나비의 꿈인지 꿈의 나비인지 모를 호접지몽胡蝶之夢일지라도, 일상이 눈물 젖은 탄식의 침상일지라도, 불면의 베개를 베고 누웠다 하더라도, 잠은 자야만 한다. 오늘도 자야하고 내일도 자야하며 관절의 마디들이 풀어질 때까지, 아니 그 너머까지 자야한다. 이 세상이 사업의 장소가 되어 시끄럽고 소란한 경제 성장의 소음 때문에 자는 법을 잃어가는 것이니 한 번이라도 인류가 숨을 돌리는 것을 본다면 기쁨일 것이라던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1817~1862)의 말처럼 낮밤을 혼돈混沌 속에 몰아넣고 만 이 세상은 제대로 자는 법을 배워야 한다. 고대 의학이 빛과 공기 음료와 음식 운동과 휴식 잠과 깸 배설과 제거 영혼의 성향(감정과 욕망)이라는 6가지 조절시스템이 인간의 본성에 맞게 배열되어야 한다고 했으니, 고대 사람들도 알았던 그 상식대로 현대 사람들은 더 늦기 전에 잠과 깸을 조절해야 한다. “광야의 까마귀와 같아지고 폐허의 부엉이처럼 되었으며, 잠 못 이루어 지붕 위의 외로운 새처럼 된”(시편 102,7-8) 이들이 자야한다. 잠의 깊은 뜻을 깨우치며 제대로 자야 한다.

Posted by benji

2017/02/06 19:31 2017/02/06 19:31

잠(2)

(2)

인생이 적어도 3분의 1은 자는 것이어서인지 배우자를 얻기 위해 하느님 앞에서 쏟아지는 깊은 잠이 들어야 했던 구약의 아담 이야기(참조. 창세 2,20-25)로부터 예수님에 이르기까지, 성경에 유달리 자고 깸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예수께서는 다급하게, 여러 번,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깨어있으라 하셨다. 처절한 십자가 고통을 목전에 두고서 괴로워하던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제발 좀 깨어 있어달라고,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있을 수 없느냐, 아직도 자고 있느냐 하고 거듭 채근하셨다. 그러나 스승의 최측근이었던 그들마저 잤다.(참조. 마태 26,36-46 ; 공관복음의 병행구) 그런가 하면 그 제자들이 훗날을 살아가기 위해 내내 추억과 기억의 원천, 희망의 샘이 되었던 주님의 영광을 흘깃 보게 된 타볼 산의 체험도 비몽사몽非夢似夢 간의 잠 속에서였다.(참조. 루카 9,32) 이렇게 예수님의 제자들은 스승의 처절한 고통과 찬란한 영광을 잠 속에서 겪었다. 하늘 나라의 비밀을 캐묻던 지식인 니코데모에게도 만물이 잠자는 시간이 스승을 만나고 온갖 것과 우정을 나누며 자신을 낮추는 기회였다.(참조. 요한 3,1-21 : 니코데모와 예수의 만남) 그럼에도 잠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완덕을 추구하는 수도 생활의 거룩한 전례와 일상의 틈새에 잠입하여 제자들이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르지 못한다.”(마태 26,41)하는 스승의 말을 감히 흉내 내면서 틈만 나면 늦잠을 자게하고, 또한 자비로우신 하느님 앞에 있는 것 자체가 명상이요 묵상이라는 변명을 하게 한다. 그래서 잠은 너 게으름뱅이야, 언제까지 누워만 있으려느냐? 언제나 잠에서 깨어나려느냐? ‘조금만 더 자자. 조금만 더 눈을 붙이자. 손을 놓고 조금만 더 누워 있자!’ 하면 가난이 부랑자처럼, 빈곤이 무장한 군사처럼 너에게 들이닥친다.”(잠언 6,9-11) 하는 말씀대로 게으름이요 가난이다.

성 암브로시오(St. Ambrosius 340?~397)당신이야말로 만물을 내신 천주님, 밝은 빛으로 낮을 입히고, 포근한 잠으로 밤을 입히며, 하늘을 다스리시는 님, 늘어진 팔다리 쉬게 하사, 일할 힘 도로주시고, 지친 맘 일으키시니, 시름 찬 고달픔 풀어주시니.”라 잠으로 하느님을 노래했고,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relius Augustinus 354~430)깨었다가 잠이 들고, 잠이 들었다가 깨는 동안 나와 나 사이는 얼마나 엉뚱한 것이옵니까? 그런 때 나의 이성은 어디 있사옵니까? 생시에 이런 유혹을 물리치고, 그 현실 자체가 꾀이더라도 끄떡 않는 그 이성이? 두 눈과 함께 감겨집니까? 육체 감관과 함께 잠을 자는 것입니까?나의 소망을 잠재워주던 사랑 겨운 노래의 기억과 습성영혼이란 일찍부터 사랑을 위하여 생겨난 것. 기쁨에서 잠을 깨어 행동할 그 때부터 저 좋아하는 일체의 사물에로 움직여 가느니라.하며 불순한 자신의 가슴 치는 심경을 고백록에서 잠에 비유하여 기록하였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용서하는 일에 눈뜨지 못한 사람은 잠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죽은 것이라고 경고했다.

Posted by benji

2017/02/06 19:22 2017/02/06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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