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1)

(1)

사람은 누구나 대개 인생의 3분의 1 동안 잠잔다. 사람은 맨 처음에 잠으로 인생을 배우고 적응하느라 긴 시간 동안을 자고,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서 시시때때로 틈만 나면 자고 싶어 하며, 인생의 종장에 가서는 혼수상태로 자는 연습을 집중적으로 하다가, 마침내 영원한 잠(영면永眠-길 영, 잠잘 면)에 들어간다. 하루만 놓고 보더라도 사람은 지나온 시간과 세상의 냄새를 뿜어내느라 씩씩거리고 코를 골면서 반드시 자야 한다. 어쩌면 인간은 너무나 약한 존재여서, 단 하루도 못 견디는 나약한 존재여서, 그렇게 뇌의 어리석음, ()의 분노, 허파()의 탐욕이라는 3을 잠으로 해독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조물주는 인간의 오장육부五臟六腑를 쉬게 하시느라 낮을 빛으로 밤을 잠으로 섭리하셨는지 모른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잠잘 때에 인간의 역사 안에 들어오셨고, 그분의 나라가 그렇게 사람들이 잘 때에 와 있었던 것이며, 인간이 잠들었을 때에 당신은 쉬지 않고 창조를 계속하시느라 아직까지 잠이 들었다 깼다를 반복하며 노심초사하시는지 모른다. 노인들이 잠이 없어진다고 말해도 잠의 총량에 있어서는 젊은 사람들과 대동소이하다. 잠자는 시간에 어쩔 수 없이 밤과 낮을 거꾸로 살아야만 하는 안타까운 인생을 사는 이들이 많고, 대개 밤이 될 때 무리지어 잠자리에 들며, 네가 서 있으면 나도 서 있고 네가 잠들면 나는 네 문 앞에서 잠들리라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잠자리에 든다 하더라도, 결국 잠은 혼자서만 자야 한다.

사람이 낯 동안에 눈물을 흘리고 마음이 몹시 무겁다가도 밤에 잠이 그를 사로잡는다면 그것은 참을 수 없는 불행이다. 아울러 눈을 떠서 잠에서 깨어난 뒤에도 내가 왜 눈을 떠야 하는지를 가늠할 수 없다면 그것은 불행 중 불행이다. 잠은 일단 눈꺼풀로 감싸면 좋은 일이든 궂은 일이든 모든 것을 잊게 해주는 약이다. 잠은 눈꺼풀로 오기에 잠의 휘장인 눈꺼풀은 인간이 견딜 수 없는 가장 무거운 무게이다. 잠은 인간만 자는 것이 아니다. 밤낮 눈을 뜨고 있다는 물고기도 자고, 겨울잠을 자는 동물뿐만이 아니라 모든 동물이 반드시 자야 하며, 식물도 밤에는 자야 하고 나아가 모든 잎을 떨구어 최대한 활동을 줄여 4四季 중 겨울 한 철을 자야만 한다. 만물이 잠잔다.

만물에게 잠은 욕망이다. 잠은 환상·망상·공상·상상幻妄空想이다. 잠은 먹고 마시는 욕망이 충족되었을 때 잠잘 생각을 놓지 못하는 쾌락이다. 잠은 쉼이다. 그래도 잠은 천사를 만나 계시를 듣고, 우주의 영감을 얻으며, 나의 무의식이나 잠재의식을 구체화하는 때와 장소이다. 잠은 망각 연습이고 죽음의 연습이다. 동양이건 서양이건 혼수昏睡(어두울 혼, 잘 수), lethargy’라는 말의 뜻이 경이에 대한 응시이고, ‘망각과 잠을 가져오는 병이며, 또한 짙은 잊음이듯이 그것이 잠이다. 잠은 자야 하는 것이다. 잠들지 않은 새벽별의 소명이 되어 새벽 수탉처럼 운다고 해도 자칫하면 이웃의 잠을 깨우는 소란이 되듯 잠과 소음은 상극이다. 잠은 결코 보지 말아야 할 신랑 에로스의 얼굴을 보지 않는 신뢰이고, 동시에 의심이며 불행의 시작이다. 잠은 도둑들에게는 음모이며 기회이다. 큐피드의 화살이 떨어진 곳에서 돋아난 사랑에 취한 야생 비올라라고 부르는 화초의 꽃 즙을 잠자는 남자나 여자의 눈꺼풀에 떨어뜨리면, 잠을 깨는 순간 눈에 띄는 최초의 창조물을 미친 듯이 사랑하게 된다는 낭만처럼 잠은 그리움이다.

Posted by benji

2017/02/06 19:17 2017/02/06 19:17
, ,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www.benjikim.com/rss/response/205

걷는다

걷는다

거의 매일, 인근에 있는 보라매 공원을 중심으로 여기저기를 한 시간이나 한 시간 반 동안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공원에는 나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걷는다.

사람들의 걸음을 보고 또 내 걸음을 보며 걷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가사의 첫 구절 때문에라도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지나온 자욱마다 눈물 고였네…』하던 백년설(白年雪 : 본명 이창민 1914~1980)씨의 오래된 노래 '나그네 설움'이 절로 떠오른다. 작사가로 알려진 고려성(高麗星 : 본명 조경환 1910~1956)씨와 함께 왜놈 경찰들의 모진 밤샘 취조 후에 광화문 거리를 바라보며 잃어버린 조국의 설움을 담아 담뱃갑에 낯익은 거리다마는 이국보다 차거워를 적어 내려갔고, 이 슬픔을 후에 노래하게 되었다는 애절하고 숭고한 사연과는 거리가 멀게, 오늘 나는 일차적으로 건강을 염려해서, 나름대로 자기 관리를 위해서 걷는다.

걸음은 내가 식물이 아닌 동물이기에, 움직일 수 있기에 걷는다. 걸음은 동물을 두고 긴다라고 하니 내가 사람이기에 걷는다. 걸음은 내가 섬마섬마하며 맨 먼저 배운 몸동작이기에 걷는다. 걸음은 어느 날 약해져 누구의 도움을 받든 기구의 도움을 받든, 기어이 내가 혼자 힘으로만 가능한 것이기에 걷는다. 걸음은 이리도 저리도 내가 내 마음 먹은 대로 갈 수 있기에 걷는다. 그래도 걸음은 늘 내가 뜻한 대로만 가지지는 않는다는 안타까움이기에 걷는다. 걸음은 내가 결국 언젠가 가고야 말 고향이 있는 나그네요 순례자이기에 걷는다. 걸음은 내가 언젠가 한 걸음을 내딛어야만 하는 결단이기에 걷는다. 걸음은 나도 걷고 너도 걷는 이웃의 행렬이기에 내가 이웃의 하나가 되어 함께 걷는다. 걸음은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내가 새 길을 따르는 이들”(사도 9,2)이고 싶기에 걷는다. 걸음은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지만, 궁극으로 나를 향해 마주 오는 것들을 그리워하는 그리움이기에 걷는다. 걸음은 누구에게나 사는 날까지 간절한 희망이기에 걷는다.

도대체 언제까지, 몇 걸음이나 걸어야 인생은 다 걸어지는 것일까?

Posted by benji

2017/01/26 10:51 2017/01/26 10:51

: 1 : 2 : 3 : 4 : 5 : 6 : 7 : 8 : 9 : ... 99 :